202245일 화요일. 맑음


월요일 아침 서울이라는 동네로 가는, ‘한양 천리 길을 떠나자니 마음이 바쁘다. 더구나 빵기네 식구를 세 해만에 만나니 가져갈 생필품도 좀 마련해야 한다. 제네바 가까운 곳에 중국 상점이 생겨 라면은 물론 온갖 과자와 고추장 쌈장까지 있다니 우리가 로마에 있던 80년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내게 부탁하는 물건은 따로 있다


산나물(취나물 다래순 고사리 뽕잎나물 시래기 톳나물)이 있고 고춧가루와 휴천재표 쌈장, 들기름, 들깨 거피 가루를 챙겼다. 그동안 아범이 사 보낸 책에다 내가 읽고 재미있었던 추리 소설(특히 코엘료 작품들)과 사회과학 도서들, 두 손주가 좋아하는 도서들을 챙기니 여러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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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며느리가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쇼핑 목록이 책이다. 몸을 위한 음식물은 중국식품점에서라도 적당히 마련하지만 애들이 국어를 잊지 않게 교육하는 일은 엄마가 철저히 챙겨야 한다. 빵기, 빵고가 6(1981~1986)만에 돌아와서도 별 어려움 없이 한국의 교육 환경에 적응했던 것도 그 많은 한국 책을 읽히고 독후감을 쓰게 하며 미리 고생시킨 보람이었다.


서울 가면 찾아볼 사람들의 숫자만큼 찾아올 사람들도 많다. 지난 1월초에 서울에 다녀왔으니 석 달 만의 상경이다. 그때는 땅이 꽁꽁 얼고 산에 나무들도 모두 꾀 벗고서 기나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적어도 덕유산 이남은 나무 끝이 모두 연초록으로 물들고 앵두나무 자두나무 벚나무는 꽃이 한창이다. 작년에도 저렇게 활짝 피었다가 4월 어느 날 꽃샘 추위로 눈으로 배꽃이 하얗게 져버리기도 했으니 꽃이 피었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돌쟁이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면 걷는 것도 반갑지만 어디서 걸려 넘어질까 염려스러움도 그만큼 크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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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도 자연도 돌아가는 품이 몹시 어지럽고 불길하다. 취임하기도 전에 온갖 갑질로 소란을 피우면서 '검찰정권'을 띄우는 자의 행보도 불길하기 짝이 없으려니와  휴천재 꽃밭의 풍경이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지상에서 사라집니다"하던 아인슈타인의 불길한 예언이 자꾸 짚이는 까닭에서 하는 말이다.


벚꽃이 필 무렵 꽃나무 밑에 서면 붕붕 거리는 벌 소리가 하늘을 채우는 잔치였는데, 최근에는 눈 여겨봐야 벌인지 파린지 모르는 벌레를 간혹 찾아낼 수 있다. 윗동네 벌치기 아재 말로는, 날씨가 너무 추워 벌이 못나오기도 하자만 꿀을 따올 벌이 없단다. 자기네가 치던 200통 넘는 벌통에서 70통이 비워졌고, 산청에 사는 친척도 수박 화수분 시키려 키우던 500여 통 중 300통이 없어졌단다. 그래도 인간들은 태평이기만 해서 자기네마저 사라질 때 쯤에야 "?! ?! 어?!" 하면서 지구를 하직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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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달려 1시경 서울집에 도착하여 짐을 푸는데 (성체회 제3회 회원인) 큰딸 이엘리가 수유리 수녀원에 월례 피정에 왔다가 우리를 방문하였다. 비록 각자의 생활로 바삐 지내지만 늘 마음 한 켠을 차지하는 정다운 사람들이니 언제 봐도 늘 보아온 듯 살갑다. ‘내가 무슨 복에 이들에게 이런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지늘 차고 넘치게 고맙고 행복하다. 비록 한 시간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것 만으로도 며칠은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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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자동차 엔진 오일도 바꿀 겸 몇 가지를 손 보러 단골 서비스를 찾아갔다. 20년 가까이 부려온 소나타의 마지막 수리일지도 모른다. 여러 명의 직원을 쓰던 센터에서 부인과 둘이서 일을 하고 있다. 까닭을 물으니 그것도 고되다며 우선 일손이 없단다. 더구나 젊은 기술공들의 갑질이 워낙 심하여 아예 20여년간 귀동냥 눈동냥을 해온 부인이 점검이나 오일 교환이나 간단한 수리를 담당하고 주인 아저씨는 기술적인 수리 작업을 맡기로 했단다. 딸도 시간을 내어 자동차 정비 기술자로 나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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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요일. 830분에 보스코는 서울 봄 연합의원에 보험공단의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고 나도 덩달아 콜레스테롤을 체크하러 혈액검사와 골다공증 검사를 받았다. 우이동 골짜기에 자그마한 그 병원이 생긴 지 불과 2년이 안되었는데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환자들이 의사들을 더 잘 알아보는 시대여서, 내 친구 영심씨도 이충형 원장님 칭찬에 입이 마른다. 사람의 진가는 설명 없이 가슴으로 알아진다. 문섐의 동지들인 민의협 의사들이기에 그런 소문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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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오늘 저녁 친구 조광 교수를 만나겠다기에 휴천재에서 뜯어온 봄나물과 쑥국으로 집에서 드시라고 초대했다. 나 역시 나물과 쑥국을 끓여 목요일에 수술하러 입원하는 내 친구 한목사에게 한 끼 먹이고 싶은 욕심에서 부지런히 나물 반찬을 마련했다. 무엇인가를 준비해 주고 싶은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한국염 목사를 만나보고 돌아와 보니 밤10시가 넘어서도 조광 교수와 한담 중이다. 보스코도 친구가 많이 고팠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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