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1일 일요일, 흐리고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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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감님이 어제 세상을 버렸다는 이장의 마을 방송이 아침에 나온다. 가슴이 덜컹 무슨 일이지?’ 지난 20년 우리와 이 동네에서 가장 말이 통하는 분이었다. 청년시절 직장생활 할 때에 노조 문제로 문재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며 이 동네에서 문정권에 투표하는 유일한 노인이었다.


얼마 전 해질녘 읍내에서 돌아오는데 유영감님이 마을입구 자리댁네 담벼락에 붙어있는 전동차 광고전단지를 눈여겨보고 계셨다. “, 좋아보여요?” “얼마 안하는구만. 갈수록 걷기가 힘들어져서...” “아저씨, 저것 타시면 위험해요. 까딱하면 천국 가는 급행열차예요. 이웃동네 할매도 저것 타다가 교통사고로 시상버렸고마.” “꼭 산다는 거이 아이고 좋아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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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맘씨 착한 둘째아들을 조르고 졸라 전동차를 샀던가 보다. 이웃집들이 모두 친척인 동네다 보니 사촌형수인 부면장댁이 작은아들에게 아버지한테 천국행 급행열차 티켙을 사드린 거여? 아버지 전동차 타시면 위험하니 아직 새거니까 서둘러 가게에 돌려주라.’ 했단다. 그래서 그제 아들이 와서 가져가려는데 안 내놓겠다고 떼쓰는 유영감님 외고집을 꺾을 수 없어 타는 거라도 일러드렸던지 오후에는 몇 번인가 마을을 돌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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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넘어까지 이장댁이 골목을 돌고도는 전동차 소리를 들었다는데... 마을에 노인 일자리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노인끼리 서로 무사하고 안녕한지 확인하는 활동(30만원 지급)으로 한동댁이 유영감님댁을 하루에 서너 번씩 들여다보고 안부를 살펴왔다.


그런데 그제밤 10시쯤 그집 불이 꺼져 있음을 보고 낮에 전동차로 골목을 돌아다니던 생각이 나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행방이 묘연하니 좀 와서 찾아보라고 했단다. ‘아차! 큰일났구니!’ 싶었던 아들은 읍에서 급히 달려와 아버지의 논으로 직행했단다. 과연 전동차는 못자리했던 논 옆 도랑에 쳐박혀 있었고 노인은 그 밑에 깔려 정신을 잃고 있었다. 숨도 끊겨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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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가버린 혼은 뒤도 안 돌아보았고, 영감님은 그리도 보고 잡던마나님 곁으로 훌쩍 가버렸다.


그러니까 그제저녁 로사리오-산보를 하며 내가 보스코에게 했던 말: “여보, 아저씨는 양로원에도 안 가실 테니, 아마 당신 집도 아니고 논바닥에서 쓰러져 돌아가실 것 같지 않아요?” 그대로였다. 어제 나와 전화통화한 부면장댁도 나도, 마을 사람들도, 그 양반 논에 꼬라박혀 죽을 줄 다 알았어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시던 흙을 끌어안고, 86년이라는 긴 세월을 내 몸처럼 쓰다듬고 주무르던 저 흙으로 돌아가셨으니 여한은 없으실 게고 옆에서 보기에도 슬프지만은 않은 인생이다.


엿새만에 드물댁이 집으로 돌아왔다. 딸 셋이 모두 옆에 붙어 엄마한테 살갑게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죽은 자와 남은 자의 감회가 남다르다. 윗집 용산댁이 쓰러져 요양병원으로 떠나자 '그 밑집에 사는 나도 죽었으면 어떠했겠노' 두려워했고, 이번에 아랫집 유영감님이 돌아가시자 집 세 채가 쪼르라니 빈집이 될 뻔했내.”라며 그래도 (살아있게 해주어) 나한테 고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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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 안에 문하마을, 아래숯꾸지만도 빈 집이 얼마나 더 늘어날까 생각하면 농촌의 장래가 너무 서글프다. 그래도 죽은 이들은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세상은 살아있는 이들의 세상이기를 바란다, 간절히.


부산 가는 길에 함양장례식장에 들려 유영감님 떠나시는 길에 마지막 절을 두 번 올렸다. 눈이 벌겋게 부은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조르는 바람에 결국 전동차를 사드린 효성을 두고두고 후회하겠지만 인생에는 계획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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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에 있는 좌동성당에서 토요일 저녁엔 견진예비자 종합교리로 사회교리강연을 하고 일요일엔 두 번의 주일미사에서 신앙인의 사회적 본분에 관한 강론을 해 달라는 주임 김치릴로 신부님의 초대를 받고 오랜만에 부산까지 나들이를 했다. 치릴로 신부님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견진강연과 주일미사의 두 번 강론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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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우리에 대한 대접과 보좌신부님 영명축일 축하식을 같이 하셨는데, 실은 팔순을 맞는 보스코의 생일로 두 아들이 없어 외로웠을 날을 하느님과 김신부님의 안배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좌동본당을 떠나기 전 보스코의 팔순 축하 노래를 받았는데, 아내에 대한 본인의 멘트가 나를 웃겼다. '등치고 간 빼기, 옆구리 찔러 절 받기, 곁불에 고기 굽기의 명수 전 순란'이란다.


3 시가 지나 해운대를 떠났는데, 충청도에 들어서자 돌풍과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졌다. 언제부턴가 50년 전의 추억을 지닌 속리산엘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빗속에 이 산을 찾아 들었다. 역시 추억이란 이루어진 사랑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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