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5일 일요일. 맑음 정월대보름


휴천재가 처음 지어졌을 때(1994) 마당에 잔디를 깔고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아내고 정성스레 키웠다. 그러나 20~30년이 지나며 진이네가 농사에 전념하면서 트럭이 드나들고 그 집에서 생산한 블루베리와 잼, 즙을 택배로 보내며 드나드는 자동차들 바퀴에 잔디밭은 엉망으로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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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 말대로 천하태평 전순란이니까, 나야 그러려니 하면서 '때가 오면 1층 사람들이 농사를 줄이거나 접을 때 잔디를 새로 심어 가꾸면 되지' 싶었다. 그러나 나이 들고 병이 심해지면 언제 이곳을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급해진 보스코는 잔디밭을 처음처럼 복원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늘 무거웠다.


드디어 아래위층 두 집이 의견 조율을 하여 휴천재 옆마당을 포클래인으로 긁어내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분쇄석을 실어다 깔아 진이네 주차장을 만들었다. 앞마당엔 주차장까지 차가 들어가는 돌길을 마련하고 봄에 잔디를 마저 심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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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부터 들깨와 쌀 두 숫깔을 갈고 짜서 토란들깨탕을 하고, 열두 가지 나물을 장만하고, 밤과 팥을 넣어 찰밥을 했다. 내 주변에 정월대보름 음식을 장만하는 집이 하나도 없어 내가 대표로 나섰다


아래층 진이네한테는 찰밥과 나물을 보냈고, 미루네는 친정아버님이 와병 중이라 내가 갖다 준 나물도 볶을 시간도 없대서 엊저녁 집으로 오라 해서 함께 보름밥을 먹었다.


저녁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라 이사야가 운전해서 지리산 영원사엘 갔다. 지리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절인데 통일신라 고승 영원대사가 건립했다 하여 절 이름도 특이하게 그 대사의 이름을 땄단다. 한때는 내지리에서 제일 큰 사찰로 너와로 된 선방이 9채, 100간이 넘는 방들이 있었단다. 유서깊은 그 대사찰이 여순사건때 모조리 불타버렸다, 지리산 다른 문화재들처럼


1971년에 중건되어 현재는 아미타불을 모신다는 '무량수전'이라는 현판을 단 법당만 있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적막한 첩첩산중이었다승방 건물은 신축 사찰건물이었지만 절터에 들어서자마자 올려다 보이는, 시커먼 돌로 높다랗게 쌓은 축대나 이곳저곳 달아낸 조립식 건물들은 지리산 풍경에 참 거슬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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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영원사에서 출발해서 상무주암을 거쳐 (실상사 7암자 중) 맨 위에 있는 '도설암'엘 올라갔는데 그 땅은 천왕봉을 마주 보고 수행 중이었다. 그 암자의 고요로움이 깊은 바닷속 같아 내려오기 싫었다. 오늘 만난 토마스2도 "도솔암 처음 갔을 때, 대나무 가지 하나로 길이 막혀 있었다. 그 대나무를 절대 넘어가서는 안되는 세계 같았다. 지리산에는 이처럼 근접할 수 없는 적막과 위엄이 서린 세계가 여러 곳 있어 내 삶이 어지러울 때 기댈 쉼터가 된다"고 하였다.


도솔암의 정적 [2010.10.28.]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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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에서 돌아와 미루네와 부지런히 대보름 저녁을 먹고 이교수댁을 방문했다. 가져간 찰밥과 보름나물은 보름날 먹는다기에 우리는 다과를 대접 받고 그 집을 관광했다. 200여 평으로 보이는 그 집은 예술가 부부답게 모든 공간이 승임씨 미술작품과 이교수 목공예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더구나 승임씨가 설치미술의 귀재라 어느 구석 하나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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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33

오늘은 연중 제5주일. 미루와 이사야는 친정 아버님을 목포로 모셔오러 제주에 가고 없어 임신부님이 운전해 봉재언니랑 오셔서 미사를 드리셨다. 있던 곳에 사람이 빠지면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미사 후 각자 해온 음식을 벌였고, 나는 식빵과 찰밥, 보름나물을 가져 갔는데 다들 보름을 못 지냈노라면서 나물반찬과 찰밥을 반겼다. 이렇게 해서 휴천재 대보름 음식은 '완판'을 보았다.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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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잉구씨가 와서 지난번 열었던 보일러 보충수통에 보온파이프를 덧씌워주고 가면서 "오후 4시에 목현에서 달집 태우기를 하고 돼지도 잡고, 떡도 하고, 떡국도 주니 오이소." 란다. 그가 주관하는 '달집태우기' 같았다. 


장만하고 있던 식혜를 생강과 계피를 넣어 마저 끓여놓고 부지런히 갔더니 이미 달집이 활훨 타고 있었다. 바람에 불씨가 냇물 건너 당산나무까지 불붙고 농협 곡물창고까지 위험해졌다. 119가 와서 불은 잡았는데 오늘 아저씨들 수고가 크겠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유림에서도 달집이 활활 타고 있었다. 불구경 오는 사람마다 떡국을 주며 먹고 가란다. 나는 이미 목현에서 먹은 터라 그 떡국은 동냥해다 집에 있던 보스크에게 저녁으로 먹였다. 설날이 가족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마을 축제다. 마을 축제에서 우리가 두렛상을 차리며 수백 년을 살아온 공동체임을 아직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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