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일 화요일, 큰 비


주룩주룩 비가 잘도 내린다. 지난 겨울부터 눈이나 비가 흡족할 만큼 왔다는 기억이 없는데, 모처럼 푸근하게 잘도 내린다. 어제 아침에는 시아 시우를 앞장세워 마을 앞 휴천강에 물구경을 갔다. 워낙 물이 풍부한 나라 스위스, 호수의 마을 제네바에서 왔으니 큰비로 많이 늘어난 물에 크게 감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시우는 물살이 이렇게 세면 물고기들은 어찔 될 것이며 물이 저렇게 흙탕으로 흐르면 눈에 안 보여 물고기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걱정이다. 말하자면 물고기와 자기 걱정을 동시에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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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도 안 되는 휴천재 기간에 시아네는 할 게 너무 많다.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하고 자연도 감상하며 음식도 고루 맛봐야 하는데 한 달 고국방문은 너무 짧다. 어제는 전주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한옥마을과 오목대와 최명희 혼불문학관도 가야 한단다. 어디를 가든 한국 사람의 저력은 강행군이다. 가다가 마이산도 보았고 이튿날은 군산생태공원까지 가겠다고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단다. 방학마다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던 아이들이라 짜증도 안내고 잘도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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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어디를 가자 하면 지리산 속에 피서 중인데 어딜가냐 고 사양하고 싶다. 아직 호기심과 열정이 남아있는 보스코는 어느 여름 알프스에 가서 서너 달 있다 오고 싶다지만 눈뜨면 보는 게 산산산인데 산이라면 굳이 찾아가서 보고 싶지는 않다


내게는 장소보다 사람이 중요하여 알프스에 살던 친구 마리오가 코로나로 저세상 사람이 되고 나니 그 산에 더 갈 생각이 없다. 베니스도 막시와 카를라가 더는 없으니 더 이상 이탈리아 명소들도 여행 목록에서 지웠다. 돈쟌카를로와 로세타가 세상을 버렸으니 로마도 카다콤바도 생소한 곳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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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 다정했던 친구 쥴리아노가 (지난 금요일) 하느님 품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큰딸 마리안젤라에게서 받았다. 80년대부터 사귄 40년지기이니 보스코의 충격(그와 동갑)이 크다. 작은딸 실비아는 빵기의 초딩 친구이기도 하다. 로마에 가도 나를 '벨라뇨까'라고 놀리던 그를 더는 볼 수 없다니 너무 허전하다. 로마대 교수였고 부인 프란체스카는 우리 공직생활 동안 내 초청으로 로마에 있는 두 한국대사관 부인들의 이탈리아 요리 선생이었다. 우리가 로마에 갈 때마다 각종 피자로 잔치를 해주던 친구다. 우리 곁에서 사라진 친구들이 먼저 가서 하느님나라에서 기다려준다는 희망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막막하고 슬프다. 아득한 이 땅 어디든 정다운 '그대'가 있어야 정든 곳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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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빵고 신부가 사흘 여름 휴가로 내려와 오늘 저녁에는 우리 온 가족 일곱이 쥴리아노를 위한 위령미사를 바치고 홀로 남은 프란치스카와 영상 통화를 나누며 문상을 했다. 남편은 고향 트라시메노 호숫가 마을의 몬죠비노 묘지, 자기 엄마 리나 곁에 묻고 돌아왔단다. 그곳엔 우리 친구 코라도, 쥴리아노의 모친 리나, 프란치스카의 모친 안죨리나 등 다정한 우리 친구들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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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은 빵고가 해냈다. 아들에게 어리광부리고 싶은 심리적인 이유인지 몸이 안 좋은지 작은아들더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들이 끓여주는 라면'을 해 달라고 했다.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이라면 젊은이들 사이에는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라면'으로 통한다니 자녀들이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첫걸음이 라면을 스스로 끓여먹는 재주 같다.


송기인 신부님이 빵고 신부가 휴천재에 왔다니까 보고 싶다고 삼량진을 다녀가라신다. 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모르고 넘긴 터라 오늘 억수로 내리는 비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려 삼랑진에 갔다. 아들신부가 운전해가니 참 편하고 기분 좋다. 송신부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점심을 사 주시며 성염이가 살레시오를 그만 두었어도 네가 신부가 됐으니 벌충을 했구나!”하시며 기특히 여기신다. 식사 후에 신부님 댁에서 여러가지 주변 얘기를 나누다 두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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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전주와 군산을 다녀온 시아 시우는 삼촌을 보자 6.25때 헤어진 가족 상봉하듯 반가워 팔딱팔딱 뛴다. 미트볼 스파게티와 셀러드를 해 온 가족이 저녁을 먹고 준비했던 케이크에 촛을을 켜고 21일 빵고삼촌생일, 423일 함미생일, 527일 아빠생일, 711일 하부이생일, 923일 시우 생일., 128일 엄마생일, 1224일 시아생일, 일년 안에 있는 가족 전부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태어남이 가족 서로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양껏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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