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4일 목요일. 맑음


어제 수요일. 아침을 먹은 후 보스코는 전날 텃밭에서 괭이로 뽑아놓은 개불알꽃과 냉이, 소리쟁이 꽃다지 바랭이 등을 갈퀴로 긁어모아 자두나무 주변에 뿌리가 하늘을 보도록 엎어 놓는다. 소위 잡초가 뿌리를 내리고 겨우내 살아냈던 땅은 기름지기 이를 데 없어 막 빻아서 체에 내린 쌀가루 같다. 대지의 입김으로 한 소금만 쪄내면 맛나고 찰진 시루떡이라도 될 듯 입맛이 돌게 한다. ‘잡초라고 부르기 미안할만큼 저 식물이 흙을 비옥하게 만드는 농사는 참으로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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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이면 저녁 630분부터 줌 화면으로 이여인터 독서모임이 있어서 발표할 사람들의 생각과 진행자의 진행을 따라가자면 젊은 사람들보다 책을 더 열심히 읽고 조리 있고 짧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평소에도 독서모임을 하며 책을 못 다 읽었다고 변명하거나, 책을 사지는 못 했지만 귀동냥이라도 하려고 참석했다는 사람을 보면 참 답답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작하는 이 독서모임에 온 사람들은 학구열이 얼마나 치열한지 한 극성하는 내가 겁날 정도였다.


돌아가며 모두 발표를 하라는데 저렇게 긴 문장을 쳐서 올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나이 많은 나(거기서도 나는 왕언니에 해당한다)는 그냥 얹혀서 갈 테니 젊은이들이나 열심히 하게나” 라고 하기에도 자존심이 상한다. 더구나 여러 나라에 흩어져 활동하는 여성운동가들이 줌으로 나누는 국제적인 화상모임이라 더 호기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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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독서자료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남자가 아내의 친정 사람들에게 건네는 호칭과 여자가 남자 시집 가족들에게 하는 호칭의 불합리한 차등을 얘기하며 남자의 서열에 따라 동서의 나이차에 상관없이 형님이라고 하는 사실에 분개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들려주며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내 나이 스물네 살 적. 막 시집간 새댁으로서 시집의 손아래 동서들을 보니 나보다 여섯 살, 여덟 살이 많았다. 나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두 동서를 한 자리에 불러 앉히고서 내가 나이는 적지만 당신 남편들의 형님의 아내니까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어디 '형님'이라고 불러봐!” 라고 복창을 시켰다니까 화상회의 참석자 한 사람이 놀라워하며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궁금하였다. “어떻게 되긴? '형님'이라고 불림을 받아냈죠. 한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이지 뭐.”


화면 참석자들의 뜨악한 표정을 보며, “그건 50년 전 이야기고, 우리 동서들이 워낙 착했으니까 가능한 이야기였지.”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얘기하거나 그런 가당챦은 요구에 순순히 순응하는 사람도 없을 성싶다. 아무튼 전순란의 기세 참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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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텃밭에 내려갔다가 마늘밭에 눌러앉아 멀칭 사이로 돋아오른 풀을 뽑았다. 검정비닐으로 멀칭을 하면 마늘 알이 잘다 하여 맑은 비닐로 씌웠더니 그 속에서 자라오른 건 마늘보다 퍼런 풀들이었다. 비닐 밑으로 손을 살그머니 넣어 풀뿌리 쪽을 야무지게 움켜쥐고 좌우로 흔들며 뽑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비닐 밑으로 끄집어낸다. 텃밭에 앉아 오전 내내 흙장난을 했더니 코로나의 후유증이나 어깨와 가슴 걸림이 언제였더냐 싶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렇게 흙은 사람을 살리는 기운이 가득하다. 시골 여인들은 이렇게 흙은 경배하며 살아왔는데(평생 동안 경배를 하다 보니 나이 70이면 모조리 허리가 기역자로 꺾여 있다) 땅에 무릎을 꿇어온 지금의 여인들이 사라지면 누가 어머니인 대지를 섬길 것인가? 미래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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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30분에 휴천재를 나와 대구로 떠났다. 오늘 대구가톨릭대학 유스티노대학원에서 보스코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특강이 있었다. 몇 년 전(2017) “경향잡지에 한 해 동안 연재했던 글을 따라 5,60대 사회인 학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강의를 한단다. 대학원장 최원오 교수는 보스코를 소개하며 한국의 아우구스티누스 연구와 번역에 있어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했다. 그럼 그 전설을 평생 보살피고 강연장마다 차로 실어 나르니 전설따라 삼천리를 하는 여잔가? 두 시간 강연을 마치고 휴천재로 밤도와 달려오니 자정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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