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7일 목요일. 맑음


수요일 아침, 먼 산에는 하얀 눈이 쌓였고 창밖에는 심한 바람에 어울리지 않게 눈송이는 여름밤의 날벌레처럼 성기게 날린다. 한여름 창문 안으로 날아들려고 여린 날개를 퍼덕이던 날벌레처럼 흩날리다 유리창에 부딪혀 녹아 떨어진다. 하도 가물어 밭에서도 흙먼지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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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집 무밭 이랑을 덮었던 멀칭 비닐이 새파람에 날려 이장네 감나무를 감고 한참이나 시비를 걸더니, 기욱이네 고사리 밭에 와서는 옻나무와 우리밭 대추나무 사이에 흔들다리를 걸고서 세찬 바람과 씨름 중이다. 갈가리 찢기도록 몸을 함부로 날리던 비닐 조각 하나가 연처럼 날아오르더니 우리 데크 기둥에서 한 바퀴 맴을 돌고서는 부엌 뒤 대추나무에 걸렸다. 정세를 지켜보는 우리 마음처럼 참 불길한 풍경이다.


오늘 오후 보스코가 검은 비닐이 눈에 거슬린다고 낫을 들고 기욱이네 고사리밭에 비닐을 거두러 내려가더니 옷에 온통 도깨비방망이로 투갑을 하고선 돌아왔다. 비명도 못 지르는 겉옷들만 마루 흔들의자에 벗어 걸고 서재로 사라진다. 저 화살을 다 뽑아내려면 내가 비명을 지를 차례다. 사고는 늘 그가 치고 수습은 늘 내가 해야 한다. 내 이름은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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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읍내 친구가 전화를 했다. “기호1번 선거운동 중인데 언니가 한 표 찍어줘야 한다는 엄포였다. “물론 찍고말고. 맘 같아서는 백만 표라도 찍어주고 싶은데, 한 표 밖에 못 찍어 애가 탄다.” “그런데 언니, 우리 지금 문정공소 앞에 와 있거든.” “아 그래? 이 추운 날 돌아다니느라 고생한다. 집에 들러 차 한 잔 하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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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서, 더구나 함양에서 민주당 색 파란 옷과 파란 모자를 쓰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다. 나라가 언제부턴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군부독재가 남한마저 동서로 갈라놓더니, 기득권 언론들은 영남지방마저 남북으로 갈라놓았나 보다. 이조시대부터 이런 분열로 먹고 산 노론(老論)의 무리와 그 후손들이 남한 땅을 오직 서로 어둠과 증오와 저주만 퍼붓는 무간지옥으로 만들어 놓았음을 목격하는 중이다. 국힘당 공약들은 시골 아낙이 보아도 검찰공화국의 건국이념인데 2030대 남성들이 이 땅에 검찰공화국을 건설하는데 앞장서는 듯하다는 소식은 참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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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정월대보름 오곡밥은 첫솥이 너무 질어 다시 한번 밥을 지어 미루네와 먹었다. 진 찰밥은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하는데 진이엄마가 자기 고향 안동의 지혜를 일러준다. 그 지방에서는 먹고 남은 찰밥을 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단다. 과연 그렇게 했더니 예상외로 맛이 좋았다. 남은 나물, 김치국과 더불어 이번 대보름은 오늘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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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내게 교정을 부탁했던 우리밀운동 30년의 기록이 책으로 나와 오늘 휴천재에 도착했다. 내 젊은 날의 열의와 사랑, 좋은 뜻으로 함께 뭉친 동지들이 떠오른다. 내가 공동대표(소비자측)로 활동한 것이 1991년 창립총회부터 2006년까지였고, 지자체나 농민회 등이 주최하는 주부모임이나 운동을 홍보하는 TV 방송에 출연하여 우리밀로 국수, , 과자 등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면서 국민의 우리밀 소비를 촉진하는 일이 내 소임이었다.


군사반란자 전두환 정권이 하루 한 끼 밀가루 음식 먹기국민운동을 일으킴과 동시에 농림부 산하의 밀재배연구소와 조상 전래의 제분 시설을 모조리 없애버린 우리밀 죽이기에 맞서고, 미국의 밀을 팔아주는 동시에 우리네 쌀농사는 죽이는 매국 운동에 맞선 우리 식량 살리기 운동이었다. 저런 매국노들의 후예들이 검찰공화국을 재현하러 백주에 나셨다니!


우리밀 살리기 운동의 가슴 아팠던 투쟁, 함께 하다 세상을 떠난 박재일 선생님과 남중현 박사님이 특히 보고 싶다보름 밥상에 단연 최고는 시래기나물인데 제일 먼저 태어나 제일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원망도 없이 구수하게 뱃속을 챙겨주는 시래기를 어느 시인이 아름답게 노래했다. 우리밀 살리기운동가들에게 바쳐진 슬픈 송가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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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되는 일 많지 않고 어느새

진입해보지도 않은 중심에서 밀려나 술을 마실 때

술국으로 시래기만 한 것이 없음을 안다

내가 자꾸 중심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뛰고 있을 때

묵묵히 시레기를 그러모아 

한 춤 한 춤 묶는 이 있었으리라.

허물어가는 흙벽 무너지는 서까래 밑을 오롯이 지키며

스스로 시래기가 된 사람들 있었으리라 

(복효근. “시래기를 위하여전라도 닷컴에서)


지난 초겨울 보스코가 휴천재 정자에 묶어 넌 시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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