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1일 화요일 한가위. 아침엔 비 그리고 저녁엔 달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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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서방님은 함평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달걀을 받아먹겠다고 오골계를 스무 마리쯤 키운다. 지난번 광주에서 만났을 적에 닭우리에 수탉이 너무 많아 처리하겠다면서 닭 잡을 사람만 있으면 갖다 주겠다기에 추석 때 가져오라 했더니, 그제 오면서 여섯 마리나 푸대에 담아 왔다. 푸대를 싣고 온 차 안에서는 닭똥 냄새가 대단했다


휴천재 감동의 쇠기둥에 묶인 닭들에게 보스코는 비록 내일 잡혀 먹히더라도 먹을 것은 줘야 한다면서 (사람도 사형 당일 아침상을 걸게 차려주듯이) 닭의 최후만찬으로 쌀과 물을 가져다 주었다, 일주일은 족히 먹을 분량으로날랜 놈 하나가 도망을 갔지만 사람들이 사라지자 동지들 근처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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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는 밤새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저 많은 닭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키워가며 한 마리씩 잡아먹을지, 한꺼번에 잡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마리씩 꺼내 먹을지, 도망자는 산짐승에게 잡혀먹지나 않을지 걱정하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잠들었는데 새벽 네 시 장닭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베개로 얼굴을 덮고 소리를 피하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반 시간마다 울어 젖히는 닭 소리는 완전 민폐였다, 아마 아랫집 식구들만 아니라 동네 전체에. 아침에 아래층 진이에게 닭 우는 소리에 잠이나 잤느냐?’ 물으니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전부 이렇게 해주세요.’란다. 그래서 결국 다 즉결처분을 하기로 했다


빵고신부가 양구 2사단 군종사병으로 있을 때 닭잡는 법을 배운 덕에 우리 모자가 힘을 모아 여섯 생명을 죽이는 살생의 시간을 치른 후 기세등등하던 함평 오골계 여섯 마리는 통닭이 되었다. 목을 자르고 끓는 물에 담가 털뽑는 일까지는 같이 했는데, 배를 가르고 내장 손질은 오로지 내 몫이 됐다.배를 가르면서 보니 숫탉은 두마리 뿐이었고 나머지 네마리는 배안에 자잘한 알이 가득했다.아까워라. 그 일을 하며, 특히 닭발을 자르며 내 손 곳곳에 상처가 났다. 남을 해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도 상처를 입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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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아들이 닭 잡는 작업을 보면서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송아지나 염소를 잡아 성찬성사를 건립하지 않고 빵과 포도주로 무혈성체(無血聖體)를 세우신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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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넓은 땅을 기운 좋게 내달리던 닭들이라 두어 시간 압력밥솥에 삶고 나니 오후 2시에야 오골계 백숙으로 추석전날의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일로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닭먹을 생각이 싹 가셨다. 서방님도 당신 뜰에서 뛰놀던 닭이라는 가족정신에 먹지를 못한다. 육식을 먹는 행위는 지구환경을 위해서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친정 오라비들의 추석모임과 아버지 산소 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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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마다 명절 지내는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집은 동양화 48폭 감상에 혼신을 다하고, 어떤 집은 오로지 주()님을 모시느라 두꺼비들이 박스로 쌓이고, 어떤 집은 가무로 흥이 하늘을 찌르느라 목이 쉰다. 그런데 우리집은 친정이나 시댁이나 술마시는 사람이 없어 오로지 말을 나누는 구강운동이다. 친정에서는 오빠가, 우리 집에서는 찬성이 서방님이 판을 잡고 다른 남자들은 듣는 편이다. 그러는 동안 세 여자는 먹을 것 장만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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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전야제는 구름으로 달 구경도 못하고 잔치는 피자로 했다. 본래 조카들과 손주들을 위한 메뉴였지만 동서들도 작은아들도 좋아해서 이번에도 사계절’, ‘고르곤졸라’ ‘호박꽃피자를 만들었고 동서들도 피자 굽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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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아침 억세게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8시에 빵고신부와 추석 감사미사를 올렸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제일 큰 부분이 가치관이다. 아이들은 말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큰다. 그리고 감사하는 생활이 바로 우리의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요지의 강론을 들으며 뭇흐'하기만 한 내 마음은 어째서일까?


문대통령의 U.N. 총회 단독 연설, 부의장과의 회견, 대한민국 특사로 간 BTS 연설과 춤은 한가위 국민에게, 그리고 코로나로  고립으로 암울한 인류에게 건네는 국제연합의 참 흐뭇한 메시지요 현장중계였다. 이런 경사까지 묵살하고 헐뜯는 이 땅의 보수언론과 그 동조자들은 어디서 온 핏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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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잘 먹고 주고받은 선물을 챙겨서 두 서방님은 휴천재를 떠났다. ‘부모님이 계셔야 고향이 있고 부모님 계신 곳이 명절 쇨 고향이라던 함양본당신부님의 주일강론처럼, 부모님이 안 계신 터에 맏형이 있는 동안은 형제간이라도 추석에 모여 우애를 나누자는 약속을 하면서. 아프지 않고 고만고만한 날들이 지나면 내년 추석에 다시 만날 형제다. 하느님이 엮어주신 이 세상의 인연의 고리에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영원에서도 늘 함께할 사람들이다.


8월 대보름달을 맞으러 송문교로 내려가 다리 위를 오가며 로사리오를 염송하였다. 저녁 8시가 좀 지나 구름이 사라진 동쪽 하늘 왕산 위로 보름달이 음전하게 떠올랐다. 집으로 올라와서도 빵고와 보스코 나 우리 셋은 테라스에 나가 오래토록 달빛 아래서 얘기를 나누고 지구의 서쪽 저 끝에 사는 빵기네 소식을 들었다. 내일이 시우 생일이어서 오늘 함무이가 보낸 생일 겸 추석 선물을 받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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