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8일 월요일 날씨 흐릿하게 맑음

 

오늘은 큰아들(크나두루) 빵기의 결혼 5년에 해당하는 기념일이다. 멀리 제네바에 있어 마음으로만 축하를 보낸다.

 

둘은 서강대 국제대학원에서 만났고, 며느리는 딸이 차마 연애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않던  부모를 깜짝 놀라게 하고서는 자기 둥지를 떠나서 우리 가족에게로 날아와버렸다. 둘의 결혼식은 우리가 늘 생각해오던 대로 거행되었다.

 

로마 대사관저에서, 사돈네 여섯 식구(부모, 큰아들 내외, 작은아들, 신부)와 우리 네 식구(우리 부부와 빵고와 신랑 빵기), 혼인미사 집전하는 주례자 박양웅 신부, 증인 두명(이사악 선교사 내외) 이렇게 단촐한 자리였다. 주례사제는 80년대 우리가 도착했을 적에 남편이 공부에 바쁜 시간이면 가족처럼 나와 두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로마를 구경시켜 주면서 친절하게 보살펴 주던 박양웅 신부님이었다. 서울 교구 신부님이셨는데 로마에서 수학하시다가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하신 분이다.

 

식장인 관저의 정원은 이사악 선교사의 부인 이콘 화가 최마리아씨와 내가 꽃장식을 하고, 신부 부케도 내가 만들었다. 신부가 걸어들어올 꽃길은 두 사돈이 리봉을 달고 테이프를 붙이고 하였고, 신부의 두 오빠들은  풍선을 일일이 불어서 장식을 하였다.

 

빵고는 미사 내내 반주를 하고, 결혼 축가는 신부의 큰오빠와 새언니가 부르고, 작은오빠는 사진을 촬영하고... 가족 모두가(가족밖에 없었으니까) 둘의 결혼을 준비하고 거행하고 축하하였다. 증인 최마리아 화가가 그려서 선물한 성모자 아이콘은 신랑신부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고, 사부인이 서울서 마련해 오신 폐백상은 조촐하면서도 품위가 있었다. 관저에서의 오찬은 성대하고도 단촐하였다.

 

[참고: 2004년 9월 28일의 결혼식 사진은 이 홈피 메인페이지의 → "사진첩"  → "가족 이야기" → "빵기 결혼"에 실려 있음]

 

지금 생각하면 빵기의 결혼식에 대한 우리의 뜻에 그대로 동의해준 사돈네에게 새삼 고마워진다. 아무리 신랑 집에서 결혼식을 주도한다지만 말이다. 매매혼에 가까운 우리 사회의 일반결혼식이 안 되고 신부 큰오빠의 말마따나 "아주 쿨한"  예식이 되게 협조해 주셨다.  또 두 집안이 그 때 한 주일 가까이 함께 지냈기 때문에 지금도 사돈네끼리 느낀다는 거리감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

 

며늘아기는 마치 기름진 땅, 태고의 대지를 보는 듯 듬직하였다. 농사를 짓다보면 흙이 거름지고 풍족하면 손질을 하지 않고도 얼마나 식물이 잘 자라는지 경험한다. 빵기가 그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멋진 나무로 성장하리라 의심치 않았고 실제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빵기도 며늘아기에게 그런 대지가 되어 줄 게고...

 

그렇게 시작한 젊은 부부가 벌써 5년을 보냈고 더구나 손자 시아를 낳아주니까 며느리 사랑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시아버지의 말도 참말이다. 주님이 정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