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0일 일요일 종일 눈부시게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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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꿈을 꾸었다. 널따란 웅덩이에  물이 말라 물고기들이 우굴거리는데 그중 제일로 잘 생긴 도미를 내가 붙잡았다. 싱싱하고 투명한 고기 옆에 우리 손자 시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제 저녁 김교수 손녀 슬한이를 보아서 손자가 보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며느리가 둘째를 가졌다는 태몽일까? 아범 빵기의 태몽도 커다란 잉어가 내 품으로 달려드는 꿈이었다. 둘째가 생기면 우리 시아도 지리산에 와서 몇 개월 내지 몇 년 우리랑 살 수 있을 텐데...

 

공소 예절을 마치고 아침을 먹다 강건너 팬션 있는 산에 밤을 주으러 가자고 했다. 막딸이 챙겨주는 케익조각과 물을 간식으로 들고 토마스가 챙겨주는 낫과 쌀푸대, 장갑을 갖고서 갔다.

밤은 지천으로  널려 있었고 밤나무 네 그루 정도 밑에서 밤을 줍고 장대로 털어서 송이를 까고 했는데도 한 말은 챙겼다. 지난번 쉼터 식구들이 왔을 적에 장대로 밤송이를 따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들이 꽤나 즐거워했을 텐데...

 

밤송이 속에는 세 형제가 나란히 사이 좋은 알들도 있고, 둘은 찌그러지고 하나만 알밤으로 큰 경우도 있고 몽땅 벌레가 먹은 것도 있었다. 혼자 자란 알밤을 보면서 내 중학교때 친구 인실이가 생각났다.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 하고 제일 맘씨 좋던 아인데 오빠 하나에게만 집안에서 온 정성을 쏟아 오빠(서울대 문리대) 학비를 대느라 그 친구는 중학교밖에 못 나오고 말았다. 지금은 관공서에서 임시직을 하면서 힘겹게 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보스코는 밤을 주으면서 벌레가 뚫고들어간 구멍이 있으면 "여긴 먼저 온 주인이 있네. 미안해라."하면서 밤톨을 숲속으로 던져 넣었다. 밤송이를 까다가도 "한 톨은 너 먹고 한 톨은 나 먹자." 하면서 벌레와 밤을 나누어 담았다. 나는 벌레 먹은 것도 모두 집어 넣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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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쯤 줍고 나자 삭신이 쑤셔서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밤이 한 되에 2천원 한다니까 둘이 한나절에 만원을 번 셈인데 "그렇게 먹고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팬션 주방에 라면 두 개 있길래 삶아먹고 주운 밤 중에서 추석 제사상에 올릴 밤 고르고 중간것 고르고 벌레먹은 것 칼질하고 나니 제각기 3분의 1씩이다.

 

오는 길에 운서 가서 용식씨네 현장을 둘러보고 왔다. 미자씨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골 아낙으로 자리매김하나 보다. 공사장에 함바집이요 한쪽에는 배추를 키우고 먼지자욱한 공사장 곁에는 말벌집을 찾아내어 소동이고... 연애시절부터 시골살자는 얘기를 나누었다고 하니 억지 귀농은 아닌 성싶지만 세월 가면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모습 속에 지리산 여인으로 조금씩 바뀔 게다. 그러다 보니 사돈 남말 하는것 같다. 오다가 가밀라 아줌마집에 아들이 벌초하러 왔다길래 밤을 좀 나눠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