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일 토요일  한가위.  날씨 알맞게 맑음

(우리 결혼 36주년 기념일이기도 함)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고 여자가 다섯 명이 부엌을 차지하였지만 아홉시가 다 되어 차례상이 차려졌다. 빵고가 부제로서 차례예배를 인도하고 보스코가 가장으로서 덕담을 하고 세대별로 술을 올리고 절을 하였다. 세살짜리 정우도 3세대를 대표해서 절을 시켰다. 내후년부터는 말씀의 전례 대신 빵고가 미사를 집전하고서 차례를 지내면 우리도 조상님들도 한결 좋아하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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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챙기고 과일과 떡을 싸들고 전주에 있는 아버님 산소를 향해서 출발하니 열한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함양, 장수, 익산, 서전주를 거쳐 "효자동 공원묘지"에 도달한 것은 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묘지 주변의 교통난이 대단하였다. 아버님 산소를 찾아 기도와 절을 하고 (젯상은 차리지 않았다.) 기념촬영도 하였다. 산소는 계모님과 그쪽 형제간들이 돌보고 있다. 아버님 제사는 계모님이 돌아가시면 큰아들한테로 가져오기로 약조가 되어 있다.

 

훈이 서방님네는 금년 봄에 혼인한 하빈이가 처가댁에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사연이 있어서 산소에서 바로 송탄으로 출발하였다. 두 가족만 광주롤 향했고 정읍휴게소에서 싸간 점심을 들었다. 마침 가까이 토기와 공작의 우리가 있어서 정우가 온통 관심을 거기에 쏟아 어른들이 밥을 먹는데 조금도 지장을 안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순하디 순한 아기다. 성씨 남자들은 모두 순하다(여자라야 작년에 시집간 심지 하나뿐이다). 걔와 수더분한 조카며느릴 보면서 지선이와 시아 생각이 많이 났다. 빵고라도 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정말 명절은 만나야 할 사람들은 모두 모여야 제격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층 더 외로운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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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효자동공원묘지 아버님 산소(1998)                      광주 방림동 어머님 산소(1957)

 

어머님 산소는 광주 방림도 공동묘지터에 있다. 옛날에는 "차고약 별장"이 근방에 있었단다. 지금은 산꼭대기에 숭이학교가 들어서고, 기독교 공동묘지였던 이곳의 묘지들은 이십여년 전에 모조리 이장하였는데 어머님 산소는 아직 그자리에 있다. 아마 그 산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산소같다. 산소는 준이 서방님이 깨끗하게 벌초해 놓았다. 묘지 아래에는 50년 넘게 그곳에 살면서 보스코 형제들을 기억하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걸음을 못 걷는 처지가 된 분이다.

 

어머니 산소에서 기도를 올리고 큰 절을 하고서 내려왔다. 50여년전 봉분을 쓸 때에 산줄기의 방향과 달리 봉분이 월산동에 있던 외갓집을 바라보게 외삼촌들이 묫자리를 잡았으므로 구별하기가 쉬웠다는 것이 찬성이 서방님의 설명이다. 그 50여년 동안 산소를 가장 열심히 돌봐 온 이는 찬성이 서방님이다. 맏아들 보스코는 수도원이다, 유학이다, 안식년이다. 대사다 하면서 많이 떠나 있었으니까....

 

성묘를 하고서는 80년대 로마에서 유학할 때 단짝친구로 지낸 리타를 보러 갔다. 그 시절 우리 둘이는 친자매보다 가까웠다. 동림동 큰언니 집에 와 있었다. 오래 전부터 혼자가 된 친구는 그 동안의 그 심한 마음 고생에 여러차례 수술까지 받고서도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지금은 목포에 있는 카리타스 수녀원 시설에서 불우아동들을 돌보고 있으면서 목포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60이 가까운 마당에. 옛날을 돌이켜 보면서 불우한 그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고 있노라고 실토하였다.

 

전라도식 요리 솜씨가 뛰어난 큰언니가 마련한 지녁상을 받고 특히 빵고가 그 맛갈진 음식들을 잘 먹었다. 8시에 집을 나와 문정리에 오니 저녁 9시 반이었다. 나는 아들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서 졸다가자다가 하다 보니까 벌써  집이었다.

 

마당 가득한 한가위 대보름달을 사랑하는 남편(선물은커녕 오늘이 결혼기념일인 줄  기억도 못하는)과 사랑하는 작은아들(그아이가 어렸을 적 얼마나 이뻤으면 보스코에게 "얘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난 당장 당신을 버리고 함께 도망갈 거에요." 라면서 사랑투정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과 함께 쳐다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명절은 아낙들에게 무척이나  피곤하지만 이렇게들 만날 수 있으니 기쁘고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