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7일 일요일 날씨 흐림

 

11시에 본당으로 주일미사를 갔다. 우이성당은 서울에서 "...동" 이름이 붙지 않은 성당 가운데 하나다. "충청도 사람 동작 느리다는 것 천하가 다 안다. 거기서는 빨간신호등이 파란불로 변할 때까지도 새참 먹을 시간이 걸리만큼 짜증스럽단다. 어느 성지를 찾아서 구불구불 올라가는데 차가 한정없이 밀리더란다. 앞차에 쌍라이트를 켰더니 꿈쩍도 않고, 차 뒤에 뭐가 붙어 있어 읽어 보았더니 "바쁘슈?"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더 작은 글씨로 "그럼 어제 오지그랬슈?"라고 적혀 있었단다. 차가 밀린 이유는 맨 앞차가 "왕초보" 운전.  그 글자 밑에 "답답하슈?" 그리고 그 밑에 더 작은 글씨로 "지도 미치겠슈." 라고 적혀 있더라나? 화가 나서 어떤 여편네가 운전하나 하고 앞지르면서 차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남녀인지 안 보이게 유리창에 "저는 옆도 못 봐유."라고 적어 두었더라고."

 

우리 본당 이영우 신부님의 이 우스개 강론은 사실 당신이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갑상선암 진단이 나왔다는 사실을 교우들에게 알리기 위한 뜸들이기였다. 모든 교우가 놀랐고 주임신부는 "그러니 우리 바삐 서둘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삶을 살자"는 가르침으로 강론을 마쳤다. 당신의 암진단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우스개소리 곁들여 공지하는 신부님이 존경스럽다.

 

오후 3시에는 보스코 동창 홍석정씨 아들이 보스코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한 터라서 청첩장을 갖고 약혼자를 데리고 인사를 왔다. 신부가 아주 참해 보이는데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란다. 조선일보기자였다면  한참 설왕설래가 있었을 텐데... 신랑은 보스코의 대자이기도 하다. 중학교때부터 엄마가 암으로 투병하는 사이에 어두운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엄마 없이 아버지 손에서 자랐으니 이제 아내를 맞아 돌아가신 엄마 같이 따뜻한 아내의 품을 기대할 것이고 신부의 웃음이 그 기대를 채워줄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보헤미안 벽결이 접시 한 세트(사계절)를 앞당겨 신부에게 선물했다.

 

밤 9시에 본당수녀님과 작은 수녀님이 놀러오셔서 담소하다 가셨다. 우리에게 오실 적마다 뭔가 챙겨주셔야 기쁜 엄마처럼 이번에는 굴비 상자를 들고 오셨다. 삶은 밤을 까서 포도주에 곁들여 먹으면서 재밌는 얘기들을 나누다 가셨다. 그분들과 시간을 보내고나면 참 마음이 따스하다. 그래선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지리산 식구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