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5일 금요일 날씨 흐림

 

지리산에서 오후 2시 30분에 떠났다. 서울까지 286킬로. 멀다면 좀 먼 거리다.

250킬로  가는데 2시간 반이 걸리고, 양재 가까이서부터 목적지까지 36킬로 가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 서울은 언제나 교통지옥이다. 얼마나 다리가 피곤하고 짜증나는지...

 

돈보스코센터에 가면 빵고를 봐야지 하는 마음에 항상 설랜다. 아들에게 전화를 하겠다니까 보스코가 하지 말란다. 우겨서 전화를 걸고 밤에 만나기로 하고 나니까 벌써 기다려진다. 자식이란 언제나 어미의 짝사랑이다. 손주녀석 시아가 스카이프를 해도 덤덤하고 마치 할머니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간혹 재롱을 부린다는 느낌을 주듯이, 아들도 "그럼 오세요."라는 덤덤한 말에 엄마는 개미처럼 초라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행복해지기도 하고...

 

기도 때에도 빵기를 위한 기도는 감사와 기쁨이 담긴 기도가 나오는데 빵고를 위한 기도에는 아릿한 마음과 염려와 의탁의 정이 담기게 된다. "하느님, 잘 돌봐 주세요. 당신 은총의 손길이 아니면 어떻게 당신 종이 되어 그 길을 갈 수 있겠어요." 라는 내용이 된다. 그애를 통해서 엄마도 겸손, 하느님 앞에 깊은 겸손을 배운다.

 

보스코와 센터 아래층 식당에서 8시에 우동을 먹고 보스코는 백광현 신부와  사무실로 올라가고 나는 맥주캔을 사서 차에 싣고 이웃 수도원에 있는 빵고에게 갔다. 경채, 남철, 정우 부제도 보았다. 아들의 동기를 만나는 것마저 아주 큰 기쁨이다. 덤으로 주시는 기쁨 말이다. 자기들은 의젓하다고 자부하는 듯한데 엄마된 우리 눈에는 마치 어미없는 고아들의 무리 같아 측은한 마음이 이는데 본인들은 우리 심경을 알기나 할까?

 

빵고네가 저녁은 김밥을 먹었단다. 금요일은 학교에서 늦게까지 있어야 하므로 김밥을 먹고 공부를 계속하다 혜화동 신학교에서 집에 오면 8시가 넘는단다. 진이네 산에서 주운 밥을 가져 갔는데 삶아 간 것은 수사들이 당장 그 자리에서 먹고 생밤은 수도원 냉장고에 넣었다

 

다른 수사들이 운동을 하는 사이에  빵고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빵고는 두 번의 무릎 수술로 인해서 영영 축구나 농구 배구 같은 운동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 가벼운 조깅을 한단다. 그것도 엄마에게는 가슴 에이는 얘기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