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25 화요일 맑음

 

원주에 갔다.

아침 8시 45분에 문정을 떠났는데 도착하니 13시 40분이었다.

 

보스코의 큰이모 (30년전 돌아가셨음)의 큰아들 김사겸 형님(20년전 돌아가셨음)의 딸 김남진 에스텔이 프란체스코 전교봉사수녀회에서 첫 서원을 하는 행사에 간 것이다. 제주도 글라라회에 입회하였다가 그곳을 떠나 로마 우리집에 와 있었고 그 기회에 양토마스신부를 통해서 전교봉사수녀회와 연결되어 하이디 수녀(창립자)의 초대로 입회하였다. 양토마스 신부의 비떼르보 잠비아 공동체에서 한 동안 부엌살림을 도맡아 봉사를 하기도 했다. 입회한지 3년만에 첫서원을 하게 된 것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정결, 순명, 가난을 살겠다고 그의 삶을 온전히 내어바치는 모습이 저 제단의 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미사가 거행되는 제단의 저 꽃들도 제 창조주 곁에서 시들어 감이 영예롭겠지... 하느님의 뜰에서 저 꽃처럼 빼어나게 피어나기를 기도하였다.

 

가족이라고는, 모친이 수술을 받아 누워계셔서, 조카 하나와 그의 단짝친구가 딸을 데리고 와 참석하였다. 5촌 아저씨인 우리 부부가 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오후에는 보스코가 살레시안이었던 시절 구로동 주일학교 제자였던 민경옥 실비아가 마련한 콘도에 가서 함께 지냈고 홍성 한우고기로 저녁을 대접받았다. 민실비아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에스텔의 허원미사에도 참석하였다. 모녀는 우리가 로마에 있을 적에도 함께 다녀갔다. 시집살이 수십년 그간 시어머니의 강권으로 절을 다녀야 했으나 이제 자유로워졌으니 다시 성당엘 나가겠지... 집안이 워낙 독실한 신자가정이라서...

 

밤늦게 나와 함께 나누는(보스코는 일찌감치 침실로 들어갔다) 이야기에서는 사업 전환으로 힘들어하는 남편, 지병과 싸우는 아들, 방방 뜨면서 곧장 앞으로 지쳐나가는 딸 얘기가 이어졌다. 실비아는 입담이 무척 좋다. 얼키고설킨 그의 가족 이야기를 듣노라면 실비아는 일찌감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짊어지고 세상에 태어난 것 같고 그 보따리를 다 풀어야만 저 세상으로 떠날 운명일 듯하다. 실비아의 환대와 친절이 무척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