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구름이 끼어 운전하기 좋았음. 저녁에는 소나기

 

아홉시경 원주의 새말 가까운 코레스코 콘도를 떠나서 양양 오색을 찾아갔다. 보스코의 친구 문철웅 루카 선생이 오색에서 민박하면서 투병중이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홍천, 인제, 원통을 지나 경관이 그토록 아름다운 한계령에 올랐다.

 

20 몇년전 인하네와 함께 설악산엘 왔고 그때 한계령에서 인하 엄마아빠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아들 (천재소년) 인하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다니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엄마의 상처는 너무도 깊었고 그것이 원인이었는지 딸 지하, 아빠, 엄마가 제각기 길을 가는 듯한 느낌을 주어 언제나 안타까웠다.

 

지난 4월에 지하가 아기를 낳아 인하엄마와 아빠가 미국으로 수발을 갔다. 지하는 빵고와 같은 해 같은 달에 우이동집 위아래층에서 태어났다. 그때가 1979년이니 30년전 얘기요 30년 넘은 우정이다. 살결이 하얗고 포동포동하던 지하와 새까맣고 쬐그만 빵고는 대조적이어서 인하 엄마는 빵고를 "토담 속의 생쥐"라고 부르면서 "얘, 지하 가까이 오지 마라! 지하 까망 물 든다."라고 놀렸다. 빵고의 종신허원 때에는 부부가 참석해 주었다. 빵고의 서품 식에도 꼭 올 분들이다.

 

지금쯤 인하네가 미국에서 돌아와 있을 테니까 전화라도 해 봐야겠다. 인하 아빠는 늘 지식에 갈증을 느끼는 인텔리겐자여서 은행 퇴직후 어느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그 갈증을 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대신 인하 엄마는 예민한 감성으로 문학에서 삶의 위안을 찾던 여인이다. 행복했던 순간, 즐거웠던 일화들은 모두 추억 속에서만 희미한 빛을 발한다.

 

구비구비 한계령길을 내려와 오색으로 들어서서 <오색민박>에 병고를 내려놓고서 고생하는, 보스코 친구 문철웅 선생을 만났다. 살레시오 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오랜 우정의 벗인데 작년 가을  간암 3기 판정을 받고서 수술을 마다하고 "밥따로 국따로"라는 식이요법에 보조식품으로 투병중이었다. 함께 점심을 들러 동네 식당에 갔지만 문선생은 기름기있는 음식, 생과일, 육고기와 콩 등을 멀리하고 채소와 감자 등으로 식사를 하였다. "완치되면 고기 한 번 실컷 먹어봐야겠다."는 푸념도 하였다.

 

몸은 수척하지만 병원에서 가료중인 사람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히포크라테스가 일찌감치 한 말이라는, 암은 손대나 손대지 않고 그냥 두나 똑 같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몸에 칼 대고 방사선치료 받고 약먹고 하면서 그 고생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점심을 하고서 오색 주전계곡을 셋이서 함께 걸었다. 왕복 8킬로미터 정도 걸었는데 그 수려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오늘 우리 등산팀이 뱀사골을 걸어 산등성이로 올랐을 거리만큼은 걸은 셈이리라. 뱀사골 등반에 참석 못해서 배가 아팠는데 이것으로 벌충하고 남았다.

 

문선생의 부인 아녜스씨는 원주에 있고 혼자서 민박집을 얻어 투병하는 중이라니 외로움과 불편함이 오죽하겠는가? 어차피 우리 인생 모두가 마지막 과정은 홀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던가?  심지어 호스피스 간호마저도 그 어두운 골목 입구까지만 함께 걸어가 주는 것이고 그 다음은 혼자 걷는다. 병원에서 수술실문앞까지 따라가는 보호자 가족들처럼 말이다. 삶 전부가 죽음을 향한 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이 무척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얼마나 많던가? 삶의 역경과 시련이 올 적마다 "이것도 신들이 언젠가는 끝장을 내주시리라."(버질)는 시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게 바로 지옥이게? 아픔도 슬픔도 상채기만 남기고 결국 잊혀져가고 먼 훗날 그 생채기를 들여다보면서 그 괴롭던 나날을 회상해 보려도 희미한 기억만 떠오르지 않던가? 기억이 생생할 적에는 그 괴롭던 순간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대견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문선생 옆방에서 하룻밤 민박을 하기로 했는데 빗소리에 물소리, 사나운 모기떼의 특별환영식과 배기는 잠자리로 거의 뜬눈으로 새웠다. 보스코는 초저녁에는 곧잘 자더니 새벽 일찌감치 깨어서 나와 고생을 함께 하였다. 문선생도 사벽 2,3시에 깨어 잠들기가 어렵다는데 집 전체에 물길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