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에 체칠리아씨가 도정에서 내려와 함께 내 차를 타고 진주로 갔다. 진주 경상대 병원이었다.

 

밤을 꼬박 새운 막달레나씨가 까칠한 모습으로 우리를 보고서는 응원군을 맞이한 것처럼 반가워하였다. 자기 몸무게 두 배나 되는 수녀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수발을 하느라 무척 지쳤을 텐데도 밝은 얼굴이었다. 수녀님의 몸을 움직여드릴 적마다 그 거구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만했다. 내가 거둘어봐도 대단한 체구였다. ("수녀님, 살좀 빼셔야겠어요. 막달레나 깔리겠어요!")

 

어제밤 10시경 히지노씨 아우 요한이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와 10여분 있다가 돌아갔고, 오늘 아침에는 히지노씨와 부인 데레사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와 잠깐 있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막달레나씨가 밤을 새우면서까지 지극 정성으로 수녀님을 돌봐드린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까 정말 며느리가 있어도 저렇게 지성일까 싶었다. 막달레나씨는 체칠리아씨가 차려간 간식과 병원밥을 얻어먹고나서 기운을 차려 부지런히 일을 계속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야만 진짜 이웃이 나타나는구나 싶었다.

 

심장 조형 CT 촬영을 해야 하는데 기약없이 기다리게 하는 듯해서 내가 병원 원목실을 찾아가 보았다. 본관 지하실에 있는 원목실은 교회당은 방 하나를 온채로 차지하고, 불교와 가톨릭교회는 한 방을 같이 쓰는데 앞 벽과 옆 벽을 사이좋게 차지하고 있었다. 벽에 붙은 골가타 십자가와 아름다운 성모님 상은 그 옆의 부처님의 너그러운 미소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부처님의 미소와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생고를 대면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표상일지도 모른다. 체칠리아씨 얘기에 의하면 그 공간을 차지할 적에 개신교가 불교나 가톨릭보다 돈을 더 많이 낸 것 같다는 것이다. 병나고 낫는 일, 살고 죽는 일이 지갑의 두께에 달린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원목실 칠판에 적어둔 신부님 연락처를 보고서 담당 신부님께 전화를 드리고 사정을 설명하고 SOS를 보냈다. 그랬더니 일 없이 너댓시간을 기다리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5분내에 효과가 나타났다. 이름도(발렌티노) 얼굴도 매끈한 젊은이가 나타나더니 5분 후에 CT 촬영을 하자고 했다.  (정말 병원에서도 아는 사람 없으면 신세가 한결 처량해진다. <유빽속결이요 무빽대기>라는 말이 (<동침이 쇄국정책이라>던 토마스2씨의 명언을 상기하시라!)  성립되는 듯하다.)

 

그런데 수녀님의 맥박이 60과 90 사이를 널뛰기 하는 바람에 촬영을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엑스레이를 먼저 찍고서  안정제 주사를 놓고서 세 시간 정도 맥박이 (60 이하로) 진정되기 기다렸지만 진정이 안 되어 결국 CT 촬영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24시간 홀터를 달아주면서 내일 홀터를 가져오라고 하였고 다음 주 월요일에 동위원소검사를 하기로 의사와 결정하였다.

 

수녀님이 응급실의 상황이나 입원을 견뎌낼 분이 아니어서(심장병 때문이 아니라 돗대기 시장 같은 주변 상황 때문에) 저녁 7시에 퇴원을 하였다. 병원비는 100만원 정도 나왔다. 일단 내 카드로 결제를 하였다.

 

내일 오후에 홀터를 떼어서 정토마스 회장이 병원으로  갔다 주기로 하고  월요일에 다시 진주로 모셔가서 핵동위원소검사를 7시간 가량 걸쳐 실시하기로 했다. 의사의 마지막 진단은 그 주 금요일 정도에 나온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수녀님은 "양로원을 알아봐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수녀님 건강으로 보아 다음주의 공소미사를 미루자는  우리의 제안에 수녀님은 오히려 위기에서 살아난 감사미사를 꼭 올려야겠다면서 미사를 미루지 말자고 하셨다.

 

체칠리아씨는 문정식당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기로 차에서 내리고, 공소에서 수녀님을 따라 내린 막달레나씨는 수녀님의 저녁식사라도 마련해 드려야겠다면서 공소로 함께 들어갔다.

 

우리 문정 공소가 얼마나 한 마음 한 뜻인가를 이번 일로 피부에 와 닿게 절감하였다. 막달레나씨의 수고에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하루를 꼬박 바치면서 모든 일을 안배하고 진두지휘한 정토마스 회장, 함양까지 구급차에 동승한 전토마스씨, 한밤중에 함양에서 진주까지 자기 차로 수녀님을 모셔간 프란치스코씨, 오늘 하루 종일 함께 움직여준 체칠리아씨, 오늘 밤 수녀님 곁에서 자면서 무슨 일이 있나 보살펴 드릴 가밀라 아줌마... 이 분들의 정성을 보아서도 우리 수녀님 제발 탈 없이 나으셔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