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5일 화요일 아침 구름 후 죽 맑은 하늘

 

어제밤에 실비가 오길래 산행을 걱정하면서도 벌침맞은 다리가 완전히 낫지 않은 터라 은근히 비가 와서 안 갔으면 했는데 아침에는 구름만 좀 끼었고 다리도 좀 괜찮은 것 같아 산행을 결정하였다.

 

갈 사람은 우리 부부, 대장 부부였다. 집지으랴, 덕장 지으랴, 노가다에 기술자로 동원되는 터라서 모두 바빴고 이기자네는 상을 당해서 마산에 갔다니 단촐한 식구가 좀 쓸쓸했다. 여럿이 같이 가면 늘 더 든든한데... 효익씨는 손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다리께에 부인과 함께 나와서 얼굴만 비치고 들어갔다.  

 

 DSC06791.jpg 9시에 음정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백소령대피소까지 6.5 킬로미터라는 길인데 세 시간이면 도착할 거라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완만하지만 계속 오르는 임도였다. 가던 길에 "자주꿏방망이"라는 뉴페이스에 감탄하였다.  누가 가꾸어도 그렇게 아름답게 피울 수 없었을 벌개미취, 누룩치, 산부추, 개망초, 산구절초. 엉겅퀴, 수리취, 개모시풀, 여뀌, 며느리배꼽, 투구꽃, 물봉숭아... 그밖에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자리 다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꽃들의 사진을 찍느라 계속해서 뒤쳐졌고 막딸은 날듯이 걸어가 여성산악인으로 키우자는 보스코의 말까지 나왔다.

 

11시 반경에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막딸이 작년 눈 내린 겨울에 김교수댁이랑 이곳에 올라와 대피소계단 밑에서 덜덜 떨며 라면을 끓여먹은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을 그리워했다. 대피소는 제법 잘 지어진 건물로 140여명이 밤을 새울 수 있는데 보름 전 아침 10시 땡하고 예약을 해야지 아니면 1,2분 안에 예약이 끝난단다. 예행연습을 해 두라는 산장지기의 충고도 있었다. 방값(자리값)은 7000원이란다. 못 오면 30% 제하고 환불한단다. 담요는 1000원을 별도로 내야 하고... 올해 우리 목표가 천왕봉이니만큼 미자씨 같은 컴퓨터 전문가가 숙박 예약을 해야 할 것 같다.

 

햇볕에 앉았는데도 더 이상 덥지 않다. 가을이 완연하다. 열두 시도 못되어 점심을 먹은 것도 처음이고 막걸리도 소주도 안 먹은 것도 처음 같고, 저녁에 추어탕 먹으면서 술 안한 것도 처음이다.  여기까지의 산행으로 성이 안 찬 대장의 결정으로 점심 후 형제봉까지 1.8 킬로미터의 산행을 계속했다. 길이 얼마나 거친지.... 형제바위에 다람쥐처럼 기어올라 (실제 그 바위에는 우리 눈 앞에서 다람쥐가 제 집에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나르고 있었다.) 보스코의 주문대로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면서 각자가 얼짱각도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하산길에는 더 다람쥐답게 다람쥐들의 먹이까지 훔쳐오고 (도토리를 여러 되 주워왔으니까) 보스코는 장거리에 다리가 풀렸는지 도토리를 단 한 개도 줍지 않고 무작정 걸어내려갔다. "워낙 채집이라는 것은 여자들의 DNA에 새겨진 본능이라서..." 운운하면서... 꿀밤떡을 하거나 도토리묵을 쑤더라도 일한 사람만 먹기로 했으니 그는 손가락만 빨아야겠지....

 

여하튼  오늘은 벽소령 왕복 16 킬로를 걸은 셈인데 사람들이 너무 빠져서 허전한 마음이 컸다. 다음엔 다 같이 오는 방도를 찾아야겠다. 산행에 빠지면 사형에 처한다던가 평생 노동형에 처한다던가.........벌칙을 더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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