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6일 금요일 맑음

 

오전에는 체칠리아씨와 진이네 팬션 있는 산에 가서 밤을 주웠다. 오늘 저녁 오신다는 손님들에게 삶아서 내어 놓으려고... 풍호가 묶여 있는 개집 뒤에는 사람들이 개가 무서워 접근을 안 했으므로 아름 번 밤송이들이 그득했지만 알밤 줍는 시기를 놓쳐선지 까보면 대개 벌레가 미리서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두어되 주워오니까 보스코가 벌레먹은 밤은 따로 추려놓았고 나는 곁에서 벌레먹은 밤 몇 개를 까서 벌레먹은 부분은 도려내고 생밤은 내가 먹거나 보스코 입에 넣어 주곤 하였다. 밤을 주워 집에 오는 길에 들국화 숙부쟁이 꽃향유를 한 아름 꺾어 왔다. 이게 더 큰 소득이다. 한 다발은 헤드빅 수녀님께 영명축일 꽃다발로 갖다드리고(그분은 들꽃을 무척 좋아하는데 거동이 불편해서 이제는 더 이상 꽃을  따러 못 간다고 푸념하면서 꽃다발을 반겼다). 나머지는 꽃꽂이를 대여섯 병 마련하여 방방에 들여놓았다. 집안에 가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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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 30분에 살레시오회 이무연 레지나 수녀님이 버스로 함양에 도착했다. 내 대신 체칠리아씨가 차로 손님을 픽업 하러 함양에 갔다. 레지나 수녀님은 보스코의 오랜 친구로 30여년전 보스코가 주교회의 교리교육편수위원으로 한 일년간 일했을 적에 함께 근무한 동료이기도 했다. 오래동안 교리신학원에서 교수생활을 하였고 지금은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총무(여자로서는 유일한 총무. 다른 위원회들의 총무는 사제들)다. 업무차 출장이란다.

 

또 우리가 공직생활을 하던 무렵 로마 한인신학원에서 일하던 구요안나(영신) 수녀님과 김비비안나(애선) 수녀님이 "땅끝"에서 오후에 출발하여 우리집으로 출발했다. 멕시코로 선교활동을 떠났는데 수녀들의 양성소와 가난한 주민들의 센터를 짓기 위해서 모금차 귀국하였노라는 소식이었다. 우리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자고서 간단다. 환영이다! 토요일 저녁미사부터 익산의 어느 성당에서 모금 강론을 한단다.

 

오늘 저녁 식사는,  스테파노씨 부부를 초대한데서 비롯해서, 공소회장의 부탁으로 영명축일을 맞는 헤드빅 수녀를 초대하고, 서울서 온 이레지나 수녀를 환영하면서 토마스네 부부와 함께 여덟 명이 함께 들었다. 헤드빅 수녀님은 이탈리아식으로 차려진 당신 축일 파티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다. 사람들을 만나고 식탁에서 정을 나눈다는 것은 되도록 많이 하는 게 좋다. 헤드빅 수녀님의 축하 케익은 함양에 나가는 길에 사온 체칠리아씨의 선물이었다.  만찬이 끝난 뒤 일행은 보스코의 서재에서 소성무일도로 저녁기도를 함께 바치고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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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만찬에 참석키로 했던 성모영보회 두 수녀님은 행차가 늦어서 밤 9시 30분경에야 도착했다. 철석 같이 믿은 네비게이션 덕에 동서남북을 돌고돌아 한밤중에 노고단을 넘어 땅끝마을에서 휴천재까지 4시간 반 만에 온 것이다. 사람마다 멍청한 그 네비게이션 때문에 멍청한 짓을 한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게다. 아랫것들을 부리려면 내가 더 부지런해야 하듯이, 그 기계를 부리려면 내가 지리를 더 잘 알아야 안 당한다.

두 수녀님은 멕시코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인디오처럼 까맣게 익어버렸으나 우리끼리 방가방가 하는 모습은 이탈리아에서 엊그제 헤어진 것처럼 새로웠다. 밤늦도록 깔깔 거리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레지나 수녀님은 작은 방에, 요안나-비비안나 수녀님은 긴방에 자리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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