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날씨는 아주 쾌청함

 

거의 3주만에 "지리산 멧돼지"(우리 등산 클럽 이름)들이 산행을 했다. 집짓느라 손질하느라 다들 바쁘고 해서 엄두를 못 냈는데 비록 몇 명이라도 산을 가자고 해서 우리 부부, 토마스 부부, 체칠리아씨가 나섰다.

 

노고단 성삼재에서 시작해서 만복대까지 5.3 킬로, 만복대에서 정령치까지 2.5킬로를 걸었다. 진이네 차는 정령치 휴게소에 주차시키고(저녁에 주차료를 내니까 소형차량이라 5천원) 다함께 우리차 소나타를 타고서 성삼재 주차장에 가서 차를 주차시켰다(주차요금 1만원: 하루 최장 주차 요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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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길은 산죽과 철쭉과 잡목으로 터널을 이뤄 지리산 공비루트 정도로 보였다. 길은 보드라운 흙으로 잘 다져져 마치 아스팔트 길 같았고 약간의 돌길과 오르막이 있기는 했지만 여간 순탄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태까지 하루 8시간 정도 걷는 산행이 예사였으므로, 꼬박 걸은 시간이 네 시간 조금 더 되었으므로 성에 안 차는 얼굴이었지만, 게으름뱅이 보스코만 딱 좋다면서 저으기 만족한 표정이었다.  저녁에 읽어본 나의 만보기는 2만 3천보를 기록하고 있었다.

 

만복대에서 점심을 먹고 대장이 느긋한 휴식 시간을 주어 대장은 낮잠 자고 보스코는 우리 곁에 자려고 누워 있다가 우리 네 명 여자들의 수다(여자 셋을 그린 姦 자가 '간사할' 간자니 여자 넷을 모아 놓으면 '수다스러울' 무슨자가 될까? 둘만 모여도, 아니 하나라도 전화를 통해서 수다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가 시끄러워선지 슬쩍 일어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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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씨와 걸으면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아내 없이도 잘 지내는 스테파노씨를 보면,  와이프보이(wife-boy) 보스코만 보아온 나로서는 감탄 그 자체다."라는 요지의 내 말에 스테파노씨의 우스운 어리광 하나를 들려주었다. 반찬이 없다고 전화했길래 고추밭에 가서 풋고추도 따오고 부추도 베어다가 반찬을 삼으라고 했더니만 "교통이 불편해서 못간다."고 대꾸하더라나? 가파른 길을 100여 미터 내려가 풀을 헤치고(그는 풀뽑는 작업을 하지 않는단다.) 들어가야 하는 그 집의 채소밭이 생각나 나도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보스코나 그이나  어지간히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그이는 부인 없는 사이에 밥을 해 먹고 찌게도 끓일 줄 안다니 대단하다.

 

여하튼 산행을 할라치면 스테파노씨의 유모어, 이기자의 (부인을 향한 극진한) 립서비스, 식사시간에 우리 모두에게 식욕촉진제가 되어 주는 용식씨 등이 오늘 빠져 빈 자리가 너무 컸다. 산행의 가장 즐거운 점심 시간에 싸간 음식이 절반 이상 남으니 더 그랬다.

 

산에서 내려와 주차비를 내면서 좀 억울했는데 국립공원 입장료 대신이라 생각하니 참을 만했다. 실상 국립공원입장료 폐지에 앞장 선 사람 가운데 하나가 보스코다(그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회원이다). 저녁에는 추어탕을 먹고 헤어졌다.

 

밤에 KBS에 블루베리 얘기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생로병사의 비밀"을 졸린 눈으로 시청했는데 "노안이 오면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고, 가까운 것, 남의 안 좋은 것은 적당히 눈감고 먼것, 영원한 것에 시선을 두라는 말인가 보다 하면서 견뎌내시라."는 교수님 말씀에 수긍이 갔다. 진이네 블루베리가 내년부터는 열매를 맺을 터인데 1500주를 심은 그의 농장이 좋은 수익을 올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진다. 더구나 눈을 보호하고 눈을 보호하는데 획기적인 효과가 있다니 눈을 많이 쓰는 보스코에게는 복음 같은 소식이기도 하다.

 

늦으막하게 잠자리에 들어 깜박 잠이 들었는데 어디서 승냥이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깼다. 보스코를 흔들어 깨웠더니 풍호를 데려와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을 해서 안심을 하고  다시 잠들었다. 풍호는 풍산개로 진이네 집 아래에서 살다가 벌꿀을 훔치러 오는 짐승들을 퇴치하라고 강건너 팬션 농장에 보낸 파수병 개다. 오늘 아침 등산가려는데 큰 길에 줄이 풀려 지나가는 풍호을 보고서 붙잡아 문정상회 앞에 묶어 두었다가 저녁에 데려온 참이었다. 내일이면 다시 원위치로 가서 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