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날씨 맑았다 흐렸다

 

오후에 파비아노 선생이 어제 우리집에서 창으로 바라보는 사진들을 찍은 USB를 갖고 집을 방문하였다. 그의 사진으로 집안에서 창밖으로 내다보는 세상은 신기하고 신비하다. 나는 함양농업대학교 행사가 있어 보스코에게 손님 대접을 맡기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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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양농업대학 친환경과 수업은 오후 3시에 창원마을에서 시작하여 지리산 숲길을 걷기였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들이다. 어느 철학자(가브리엘 마르셀)는 아예 인간을 정의하여 "길가는 사람"(homo viator)이라고 불렀다. 시간을 타고 흘러가면서 그때그때 갈랫길에서 선택해야 하는 실존을 가리킨 말이리라. 그리고 내 인생의 한참 후반을 나는 지리산 자락에서 걷고 있고  비록 "남은 날은 적지만"(김남조)  여전히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창원마을 쉼터에서 그 마을 지킴이(함양농업대학 관광농업과 학생이자 창원마을 이장)의 설명을 듣고 하과장의 인솔하에 산비탈을 따라 의탄마을까지 내려가는 둘레길을 걸었다. 갈대와 숲과 논밭이 어우러지는, 잘 다듬어진 산행길이었다.

걸으면서 끼리끼리 집안얘기, 농사얘기, 친환경한다고 농약을 안 치면서 고추농사를 시도했다가 일천 평의 농사를 다 망치고 자기네 먹을 고추마저 이웃에서 여덟 근을 샀다는 학생-아저씨 얘기를 들었다. 제초제를 안 쓰기는 기본이고 병이 나거나 벌레가 생겨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오래오래 생각하면서 걸었다. 농사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농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부자농부"가 될지도 얘기들 했다.  사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귀농하여 농부가 된다는 말은 앞뒤가 잘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욕심 안 부리고 먹고 살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인데, 퇴직하여 귀촌한 남편의 연금으로 사는 아낙의 편한 마음이라고 지적받을 수도 있겠다. 하여튼 길가는 내내 땅을 살려야 우리가 살고 농사가 산다는 얘기들이 제일 많이 나왔다. 역시 친환경과 사람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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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의탄마을에서 끝났고 일행은 칠선계곡으로 들어가서  "칠선산장"에 들려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어제 우리집에 왔던 선시영 사장이 반갑게 일행을 맞아주었다. 칠선계곡에서 들국화를 한아름 꺾어 왔다.함께 산길을 걷고 함께 저녁을 먹고 하면서 우리 서로 지속적으로 만나자는 얘기가 줄곧 나왔다. 이 다정한 벗들을 보면 들국화 향기가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