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8일 목요일 오전에 맑다가 오후에 구름 많음

 

추석에 막딸이 안동 친정엘 갔는데 친정아버지가 수술까지 한 아픈 다리를 끌면서 참깨 농사를 지으셔서 일곱 딸과 한 아들 등 여덟에게 각자의 몫으로 여덟 봉지를 마련하여 마루끝에 챙겨놓고 나눠 주시더란다. 게다가 내 몫까지 보내주셨으니 고맙기만 하다. 오늘 오전에 깨를 일어 모래를 골라내  햇볕에  말렸다. 깨소금을 할 요량으로 손질을 하는데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모아서 보내셨을 생각을 하면 앞으로 이곳에서 뵈오면 단단히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막딸네는 일곱 딸에 순둥이 아들 하나, 모두 여덟인데 한결같이 고만고만 따사로운 모습에 행복하고 사이좋은 오누이들이어서 부럽기만 하다. 재작년 친정어머니가 심장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셔서 혼자 되신 아버지는 지금 혼자 생활하고 계시다. 자식들 여덟이 너나없이 아버지를 걱정하고 돌봐드리니 복도 많은 분이다. 특히 두 딸은 안동에 가까이 있어서 수시로 반찬을 마련해 드린다는 얘기다.

 

오늘은 용식씨네집 지붕을 덮는 날이다. 집짓다 탈진한 미자씨를 생각해서 진이엄마와 내가 떡, 막걸리, 수육, 김치와 묵을 마련해서 번개팅을 겸한 상량식을 가졌다. 그자리에서 우리 등산팀 이름이 대장의 제안으로 "지리산 멧돼지"로 정해졌다. 멧돼지들이 거의 다 모였다.


 체칠리아씨는 어제 부산에서 왔고 오른팔이 아직도 힘든 처지임에도 뭔가 하려는 열정은 아무도 못 따라간다. 글라라씨는 서울 가서 오늘 내려오는 중이란다. 손을 다쳐 힘을 못쓰는 효익씨는 두 아들을 데리고 잔치에 왔다.

 

  DSC07216.jpg   DSC07222.jpg

 

아래에서는 석형씨와 이기자가 힘을 끙끙 쓰면서 제붕 파넬을 올리고, 지붕 위에서는 대장과 용식씨가 끌어올린 파넬을 나사로 고정시키느라 고생이다. 네 장정이 덤벼서 그런지 일에 제법 속도가 붙었다. 진이 엄마의 명언에 의하면, 집을 한 번 지으면 교훈을 얻고, 두 번 지으면 뭣좀 알게 되고, 세 번 지으면 선생이 된다나. 그런 뜻에서 이곳 남자들은 보스코만 빼고 다 선생이다.

 

DSC07205.jpg    DSC07239.jpg  

 

특히 집달아내는데 이력이 난 스테파노씨는, 이웃이 방을 달아내려고 한다는 말에 반색을 하면서 "집 달아내는 데는 내가 선생 아이가. 내가 다 가르쳐 줄 게." 하고 나선다. 오른팔이 성하지 못한 아내를 두고 스테파노씨는 부인이 왼손마저 망가지면 입으로라도 일을 할꺼라면서 (= 시키기만 할꺼라면서)  은근히 핀잔이다. 천하에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그는, 아내가 자기를 일에만 묶어놓을까 걱정인가 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우리 모두에게 끊이지 않고 폭소를 선물해 준다.

 

우리는 이렇게 만나면 마냥 즐겁고 헤어지기는 참 어렵다. 도시에서는 사람에 치여 힘들어들 하는데 이곳에 와 보니까 정말 사람 귀한 줄 알겠다. 귀한 사람들이니 부처님처럼, 예수님처럼 받들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