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4일 일요일 날씨 맑음

 

아침 7시 공소예절을 헤드빅 수녀님의 부탁으로 빵고가 안내했다. 성체도 그 아이가 영해주었다. 강론까지 포함해서 제법 의젓하게 부제 몫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인 나도 이제는 빵고를 어른으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서른한 살인데도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린애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예순 살 먹은 아들더러 "얘, 건널목 건널 때에 파란불 켜지면 가거라."라고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빵고가 점심에 이탈리아 요리를 먹고 싶다고 해서 마카로니 제노베세, 근대나물, 가지나물, 바케트에 퐁뒤를 얹어 오븐에 구워냈다. 어렸을 적에 이탈리아에서 자라선지 양식을 즐겨 먹는다. 아이가 음식먹는 모습만 보아도 뿌듯하다. 12시 30분 서울행 버스여서 함양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왔다. 아들과 헤어진 것이 금방인데 벌써 다시 보고 싶고 언제 또 보나 하는 계산이 머리에 떠오른다.

 

저녁식사후 네 가족이 모여 소성무일도로 저녁기도와 로사리오 한 단을 바쳤다. 김교수네가 공소예절에 왔길래 초대하였는데 피곤해서 오지 못했다. 스테파노씨 부부, 프란치스코씨 부부, 회장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기도를 올렸다. 보스코는 무슨 전도하듯이 소성무일도를 마을에 보급하는 중이다. 물론 부부가 함께 기도하면 참 좋기는 하다.

 

기도후에는 추석 뒷풀이를 겸해서 용식씨 부부도 합석하였다. 서로 못 본 것이 열흘 밖에 안 되었는데도 서로 몹시 반가웠다. 글라라씨는 한과와 떡, 체칠리아씨는 밭에서 끝물로 따낸 도마도, 막딸은 친정에서 가져온 땅콩과 고구마를 쪄 왔다. 제법 풍성한 한가위 뒷풀이였다.

 

시골에 살면서 느끼는 점은 늘 삶이 풍족하다는 기분이다. 먹을것도 그렇고 사람 사이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왜 그럴까? 아마도 어머니인 대자연이 주는 포근함에 안겨 살기 때문이 아닐까? 또 대자연을 삶의 자리로 골라 온 사람들의 심성이 그만큼 선량하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려는 그들의 너그러움 때문이 아닐까?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도저히 못 느끼던 기분이다.

 

올해까지 모두 곶감 덕장을 지은 터라서 오늘 화제는 압도적으로 감얘기였다. (글라라씨는 감 깎을 생각을 하면 감이 붉게 익는 것조차 보기 겁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올해는 전국적으로 감농사가 흉년이라는 소식들을 내놓았다. 그러니 곶감 만들 감을 확보하는 일이 제일 큰 문제란다. 청도에도 감이 없고 진이네가 작년에 감을 사온 곡성에서도 감나무에 병이 돌아서 감이 죄다 떨어져 버렸단다.

 

올해 보조금을 받아 덕장을 지은 스테파노씨는 사랑하는 부인의 팔이 걱정되어선지 감흉년으로 감 구하기가 힘들다는 얘기에 제일 반갑다는 말투로 자기 걱정을 감추었다. "천재지변인데 두 동을 못 깎아도 하는 수 없쟎아?" 프란치스코씨도 "그럼 <곶감 팝니다> 광고를 내놓고서 일주일 후에 <고객의 성원으로 매진 사례> 광고를 때려야겠다. 그리고서 내년부터는 <곶감은 여름부터 주문하시압. 한정주문생산>이라고 인터넷에 올려야겠다."고 해서 모두 한 바탕 웃었다. 진이네도 서너동 할 생각이지만 11월이 되어야 판세를 알 것 같다. 농사는 하늘이 하는 일이려니 하면서 모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퍽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