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수요일 맑음

 

수세미물을 받기 시작했다. 봄에 서울집에 다섯 포기를 심었는데(그때 바빠서 이웃 친구 영심씨더러 심어달라고 부탁했었다.) 3층다락방까지 뻗어올라가서 줄기도 이파리도 굵은 열매도 서쪽 유리창으로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렁주렁 열린 수세미는 따서 상수 엄마 드려서 감기약을 만들게 했다. 근육이 불뚝불뚝한 총각 팔뚝만한 수세미가 열 댓 개는 실히 되었다.

 

해마다 하듯이 수세미 밑둥지 50센티미터 높이에서 줄기를 싹둑 자르고 위로 뻗은 줄기도, 아래서 올라온 줄기도 플라스틱병에 구겨 넣어서 은박지로 봉해 두고서 물을 받기 시작했다. 첫날은  병으로 거의 2리터의 수세미물을 받을 수 있다. 한 1주일 간은 물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매일 물을 수거해야지 그냥 두면 자칫 물이 상한다. 땅이 메마르면 수세미물이 현저하게 줄기 때문에 200CC도 받기 힘들어진다. 해마다 9월 하순에 해왔고 시기를 놓쳐 10월로 넘어가면 받을 물량이 크게 준다. 땅이 메말라 있으면 부근에 물을 대서 뿌리가 보다 많은 물을 울리게 유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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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집 침실 창가에 올라온 수세미                               서울집 이층서재 창가에 올라온 수세미

 

그렇게 받은 물을 깨끗한 플라스틱이나 유리병으로 옮겨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아침 저녁 소주잔으로 한 잔씩 마시면 기관지 천식에 그만이란다. 그러나 내가 지난 20여년간 수세미물을 사용해 온 것은 자연 화장수로서다. 일본 도쿄대 생화학과 교수가 전수해준 배합비로 화장수를 만들어 상온에 두고 스킨로션으로 애용하고 있다. 얼굴에 여드름난 젊은이들도 효과를 톡톡이 보고서 자주 얻어간다. 알러지나 아토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내가 준 수세미 화장수에 덕을 많이 본다. 보스코는 면도 후에 반드시 이 물을 발라 뒤탈을 피한다. 이 물을 안 바르면 면도후 하루 종일 그 자리가 가렵고 덧난단다.

 

혹시 수세미물 화장수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해서 여기에 배합비를 기록한다. 나도 자꾸 잊어먹어 여기에 기록해 두고 쓸 생각이다.

수세미물 1000 CC

에탄올 (약방에서 구하는 알콜) 454 CC (gr)

글리세린 (약방에서 구입) 233 CC (gr)

붕산 (약방에서 구함) 26.6 gr.

 

이틀간 받은 수세미물이 8리터를 넘었다. 그래서 오전에 수세시물에 섞을 에탄올 등을 사러 , 약값이 서울에서 제일 싸다는 삼양동에 갔다. 3만 5천원을 주고 모든 재료를 산 뒤에 차에 와서 보니 주차위반으로 딱지가 붙어 있었다. 벌금이 3만 6천원. 내 계산의 한계는 늘 이렇다. 보스코가 보면 좋아라고 또 날 놀리겠지. "원숭이 나무에서..."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나의 실수는 공교롭게도 남편의 기쁨이다.

 

맥이 빠져 집에 와서 락궁에서 자장면과 볶은밥을 시켜 둘이서 점심을 먹었다. 마천의 중국집에서 그렇게 주문하면 "한 가지로 통일하든가 먹지 말든가 하쇼."라는 식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온다. 문정까지 주문배달은 물론 받지 않는다. 그래도 늘 친절하던 "외팔이네 짜장"이 인월로 이사가 버려서 불친절한 집이 독점업체가 되어 더욱 불친절해졌다. 그냥 자장면 한 그릇, 볶은밥 한 그릇을 시켜도 말없이 집에 배달해 주는 것도 고맙게 느껴지고 서울시민의 특권인양 여겨지는 것은 내가 어지간히 지리산 시골아낙이 되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