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날씨 맑음

 

눈을 뜨면 마음이 평화롭다. 뭔가 마음과 방안, 집안, 뜨락, 앞산 그리고 우주에 가득차 있는 고요와 기쁨, 어떤 따사로운  기운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소성무일도로 하루를 연다. 보스코가 눈에 보이는 게 이렇게나 좋다.

 

함께 기도하고 기도가 끝나면 곧이어 함께 국민보건체조도 하고  밥상 머리에 앉으면 나는 참새마냥 재잘거린다. 그는 빙그레 웃고만 있다. 간혹 가다 한 마디씩 거들고.... 여기에 무슨 욕심을 더 부릴 일이 없다. 신달자씨가 24년간의 남편 병구완을 한 끝에 그를 떠나보내고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한번 아내가 되고 싶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현관에 나가니 덩굴채송화가 추위에 바짝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 큰 화분을 번쩍 들어 이층에 들여다 놓았다. "또 한 식구가 늘었군!" 라고 한 마디하는 보스코에게 나는 집에 있는 자리를 좀 양보하라고, 좀 나누라고 잔소리를 하고서는 물과 영양제를 주고 떡닢과 진 꽃을 따 주었다. 저녁이 되니까 벌써 이파리가 새 기운을 얻어 싱싱해 보인다. 겨우내 꽃으로 보답할 게 틀림없다.

 

        밖에서 추위에 오그라 들었다가 방안에 들어와서 한나절만에 몸을 푼 덩굴채송화

   DSC08401.jpg DSC08411.jpg

 

시레기를 비닐끈으로 엮어 감동의 그늘에 널었다. 겨우내 된장만 있으면 푹 삶은 시레기국으로 좋아할 그를 생각하며. 고추를 눌러주고 동치미 절인지 사흘이 돼서 간을 맞추고 물도 부었다.  서리거지 아삭이고추는 무우 소를 넣어 고추김치를 담그고 어린 고추는 데쳐서 겨울에 졸여 먹을 생각에 냉동실에 보관했다. 이렇게 겨울채비를 하면서 욕심내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그냥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살면 건강해지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보스코는 점심후 해가 있을 때에 밭에 가서 양파 심을 고랑을 일쿠고 풀을 뽑고 보까시 퇴비를 섞어서 밭두렁을 만들어 주었다. 날씨가 너무 차서 모레나 글피 쯤 좀 풀린 다음에 양파를 심어야겠다. 모종은 얻어다 흙으로 덮어 놓았다. 밤이면 종이상자로 덮어 두었다가 아침에 치워주고 있다.

 

진이아빠는 나더러 양파나 마늘은 그냥 사먹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손으로 심고 싶다. 그 여린 모종이 뿌리를 내리고 굵어져 어른 주먹만한 알을 만들 양파 한 알 한 알을 머리에 그려본다. 그게 돈으로 만들어지는가? 아마도 그런 작업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한몫 동참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하느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내가 할 일은 하고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저녁 9시에 2층으로 올라온 진이엄마 아빠와 소성무일도로 저녁기도를 바쳤다. 감동의 일이 시작한 다음 오랫만에 함께 모인 듯하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하고 행복했음에 감사드린다.

 

     작년 여름 손자 시아와 행복하던 한 때

   DSC04623.jpg

  

 

보스코가 서울서부터 설사를 한단다. 서울에서 매일 우유와 빵을 먹어서 그랬겠지. 물을 끓여 매실액을 진하게 타주었다. "엄마 나 아파!" 어렸을 적에 내가 엄마에게 말하면 "그래, 너 벼슬한다." 하시던 엄마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기억난다. 왜 엄마가 그런 말로 대꾸하셨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기야 우린 다섯 형제였다.

 

작년 여름 손자 시아가 휴천재에 와 있을 적에 다리와 팔이 모기에 물리고 그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긁어서 사방이 벌겋게 부었을 때였다. "함무이, 아파." 하고 손가락을 내밀면 내가 손가락 끝이나 그 통통한 팔뚝이나 다리에 후웃하고 입김을 불어 주었고 그때마다 아기는 "됐다." 하면서 안심한 표정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함무이, 아파!"  "누가 내새끼 다리를 이렇게 했담? 후후! 후후!" "아, 됐다!"

 DSC04728.jpg DSC0472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