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흐리고 바람이 심했음.

 

밤새 심하게 바람이 불어 서재 뒤곁에 매달아놓은 풍경이 내내 시끄러웠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불안하기조차 했다. 진이네 덕장 천막이 날아가며 감았던 쇠파이프가 부러졌단다. 간밤의 바람이 얼마나 소란스러웠는지 알겠다.

  

공소예절을 드리러 온 사람들도 추위에 잔뜩 움추린 표정들이었다. 바로 이런 날 장효익씨가 안동으로 짐을 싸서 이사를 한단다. 일찍 떠날 것 같아 공소 끝나고 바로 갔는데도 마루끝에 매 놓은 빨래줄에서 펄럭이는 아이들 청바지랑 티셔츠가 주인들 대신에  작별인사인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인기척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까 이미 6시에 떠났단다. 남긴 자취를 보니 일찍 서둘러 떠난 게 역력했다. 개 세 마리만 주인행세를 하면서 짖어댔다.

 

가는 길에 점심값이라도 전해 주려고 했는데 식구들만 떠났으니 그들은 얼마나 쓸쓸하고 서운했을까?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 장효익씨가 얼마나 살갑게 했는지 친아들네보다 더 좋았단다. 남은 사람들도 서글프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우리 지리산 멧돼지"들도 막내를 떠나보낸 마음에 다들 안쓰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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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익씨 부부가 우리와 함께 찍어 남긴 유일한 사진 (2009.7.12 칠선계곡 산행)

앞줄 왼편 두번째와 세번째가 효익씨 부부

 

점심에는 마음 수련하는 사람들한테 카레라이스만 해서 미역국을 끓여다 주었다. 내일은 영하로 내려간다니까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요 며칠 그래도 따뜻한 날씨에 자라오른 호박닢을 모조리 수거했다. 네 식구가 두 끼 먹을 정도는 된다. 동네 여기저기에서는 무우뽑는 날인가 보다. 내일 추위에 얼까봐 뽑는단다. 마르타 아줌마도 무우를 뽑고 있었다. 요즘 희망근로 다니느라 일요일이면 좀 쉬어야 할 텐데 "영감은 공이나 치러 다니고..." 하면서 정신없이 바쁘다.

 

뒷집, 큰스님 그리고 나는 쌀푸대로 두 푸대 가득히 무우와 무청을 얻어 실어왔다. 바쁜 사람은 죽어라 농사를 짓고 놀고 먹는 우리는 얻어만 오니까 염치가 없다.  동네 인심은 이렇게나 푸짐하고 너그럽다.

 

동치미가 좀 모자라기에 독에다 열댓 개 작은 것은 씻어 넣고 보니까 마르타 아줌마가 준 무우가  30개는 족히 된다. 김장에 쓰기에도 족한 분량이다. 유난히 진딧물이 끼어 보이던 배추 한 폭도 우리 밭에서 뽑아다 동치미에 넣으려고 소금에 절였다. 겉을 벗기니 속은 깨끗하고  꽉꽉 차 있었다. 내 마음도 마르타 아줌마의 후한 인심으로, 배추 속 처럼 꽉꽉 들어찬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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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타 아줌마가 준 무우                                 우리 밭에서 뽑은 배추속    

 

이 기분에들 농사를 짓는 것일까? 자식들에게 김장하라고 보내거나 아예 김장해서 보내고, 도회지 사는 친척들에게 택배로 보내고, 귀농해서 사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하는 이 기쁨, 한 마디로 나누는 기쁨에 마르타 아줌마도 우리를 주면서 힘든 줄도, 아까운 줄도 모르나  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누구와 나누고 있지? 아이스 박스에  무우를 신문지 깔고 보관했다. 누구와 나눌까?

 

밤중에 책을 읽고 있다가 아직 밭에 있는 아욱 생각이 났다. 벌떡 일어나 옷을 껴입고서 후래쉬를 들고서 내려가 아욱을 뜯었다. 어떻게 농새해 키운 건데 얼게 놔둘 수 없지 않은가? 뜯을 것은 다 뜯어다 씻어서 냉동실에 넣었다. 이렇게 갑자기 겨울이 온다니까 뭔가 잃을 게 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값으로 따지면 별거 아닌데도 말이다.

 

내일이면 보스코가 오겠지. 금, 토, 일, 월 벌써 나흘째다, 그를 못 본 게. 빨리가서

보게 데리러 함양으로 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