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날씨 종일 흐리고 밤늦게는 비가 옴

 

오늘 드디어 진이네 곶감깎기가 피날레의 종을 울렸다. 끝맺음을 함께 축하하려고 뒤지터 나여사, 도정의 이기자네  네 식구(이기자 부부, 처남, 처제)이 합세하였다. 나여사는 여러 집의 꽂감깎기에 자원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마운 일손들이다. 오라버니는 자기네 일이 끝나니까 금단현상이 발생하여 허전해지는 고로 다시 깎는 다면서 진이네  일손을 도왔다. 진이네 덕장 속이 왁자지껄 축제분위기다.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긴 동지들의 끈끈한 우정, 땀흘리면서 해낸 자랑스러움이 얼굴들에 빛나고 있다. 그동안 사용한 목장갑을 빨아 널어놓은 진이네 마루는 설치예술 작품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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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오라버니에게 소성무일도를 선물했다. 오라버니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안 한지를 이미 통달한 사람이다, 아마도 큰 값을 치르고서. 늘 진지하고 진리를 향하고 추구하면서 살고 싶다는 의욕이 보인다. 그래서 그를 보면 도인을 보는 느낌을 받는단다. 아마 그가 기도를 드린다면 정말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지. 그가 도정에 집을 짓고 자기 가족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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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에는 칠선계곡 "칠선산장"의 선사장이 우리를 초대하였다는 파비아노선생님의 연락을 엊그제 받은 터라서 그곳에 갔다. 진이네도 초대받았지만 덕장일을 마무리 짓느라고 못 갔다. 파비아노 선생님, 문상의 윤교장 선생님, 광주리농장의 김사장님 부부, 선사장 부부 이렇게 해서 여덟 명이 걸게 차린 상에 둘러 앉았다. 

 

 30년된 옻나무를 베어 벗긴 껍질로 삶은 통닭이 주메뉴였다. 그 일로 선사장은 옻이 올라 얼굴(친구들은 '낯판떼기'라는 경상도 말을 썼다.)이 퉁퉁 부어 있었다. 먹기도 전에 옻이 올라 헐크의 형상인데 부인도 요리를 하느라 몸이 가렵다고 하였다. 우리는 맛있게 먹으면서도 주인 내외한테 몹시 미안한 마음이었다.  오늘의 특선메뉴는 석이버섯 요리들이었다. 석이볶음, 석이 생무침, 석이밥, 석이 전.... 그 귀하고 값비싼 석이버섯을 실컷 먹으면서 마냥들 행복하였다. 선사장은 그것을 따려고 전국에 "...악산"이라고 바위 이름이 붙은 산들은 다 돌아다닌다고 했다. 흔히는 자일을 타고 벼랑 끝으로 내려가는 곡예를 한다니까 한 사나이가 목숨 걸고 따온 소중한 음식이었다. 석이버섯은 암벽 바위뒤 그늘에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친정어머니까지 모셔와서 정성껏 차린 밥상을 받고 보니 이곳 분들의 인정이 안개비처럼 가슴에 젖어온다.

 

돌아오는 길에 파비아노 선생님은 청산별곡에 내려드리고, 윤교장선생님은 문상마을로 모셔갔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윤선생님의 농담어린 얘기들을 들었는데  얼마나 자신의 일에 힘들었나를 가슴으로 토로하는 어조였다.  교장선생님 말씀인 즉, 그동안 너무 매어 살아온 인생이어서 "앞으로 10년간은 나만을 위해서,  나 하고 싶은대로 살겠다."는 표어를 내걸고 지금 살고 있는데 벌써 한 해가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분을 그토록 속박해온 것이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분을 이토록 자유를 갈구하는 그리움으로 가득 채웠을까?  여자로서 매우 궁금해진다. 일주일에 하루를 빼고 술을 마신다면서 소주 두세 병은 마셔야 마신 기분이 든단다. 친구 만나고 여행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특히 닭껍질과 닭 내장탕: 내가 보스코에게 못 먹게 무던히 말리는 것들이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살고 싶다는 그의 모습에서는 마라톤 역주를 마치고 운동장 마지막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지친 마라토너의 모습이 보인다.


임선생님을 볼 적에도 그런 느낌이지만 왜 많은 남자들이 이렇게 힘든 코스를 달리는지 안타깝다. 우리 여자들의 모성애 아닌 모성애(곁에 두고서는 달달 볶아대면서 멀어져 가 있으면 안타까워하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가슴을 저리게 하는 모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