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9일 금요일, 맑음


어젯밤 우이동집엘 들어서는데 완전 정글이다. 꽃과 풀이 사이좋게 어깨를 기대고 사람이 다녀야 할 징검다리 길까지 막고 있다, 동네 건달들처럼. 길을 지나간 옷자락엔 붉은 나리꽃 꽃술이 쓰윽 상처를 남겼다. ‘내일 아침에는 내가 손 좀 봐주지,’ 양손을 슬슬 비비며 잠이 들었는데 한 잠 자고나니 오늘 낮 온도가 36도라던 예보가 기억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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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심은 으아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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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감비도 착근하여 화려하게 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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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엔 어차피 일을 못할 것이니 다섯 시에 일어나 는게 더 합리적인 듯했다. 옆집도 주인이 바뀌었는지 리모델링을 하는 중인데 6시에 벌써 일꾼들이 움직이고 있다. 작년에 가져다 씨 뿌린 신선초가 한 길 넘게 커서 아랫집 원룸 처녀들 방을 훔쳐보고 있어 경찰에 경범죄로 고발당하겠다.


앞집 성진엄마가 내 목소리를 듣고 돈대에서 고개를 내밀고 자기네 축대 끝에 솟아난 비자나무를 잘라달란다. 그 돌담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싹을 틔우고 어떻게 뿌리를 내렸으며 무슨 영양가가 있어 저렇게 튼실하게 컸을까? 저 비자나무가 우리집에서 옳겨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 마당 비자나무에서 20미터나 떨어져 있고, 저 축대 위 틈새로 도토리만한 씨앗이 어떻게 날아간단 말인가? 누가 뭐라도 우리 비자나무는 행실이 나쁜 애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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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절구에 물을 채워 놓으면 날새들이 즐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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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네 딸 배가 불러오면 적령기에 있는 동네 총각들 모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듯, 애꿎은 우리 비자나무를 의심 하나본데 발가락이 닮았다고다 우리 손주로 끼고 살 수도 없는 노릇. 하는 수 없이 내가 축대를 기어 올라가 톱으로 잘라주었다. 평지에 태어났으면 귀히 여김 받고 튼실하게 자랄 텐데 때와 장소를 잘못 만나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운명을 마감했다. 마당 손질을 하고나니 아침 10시.


두 주간 우리 시아 시우를 돌보시느라 고생한 사부인께 감사 전화를 했다. 시우의 언행이 통화내용의 주종을 이룬다. 오늘 아침에 형하고 게임을 했는데 지고 나서 형이 이겼다고 환호성을 지르자 통곡을 하며 진사람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며 억지를 부리더란다. 외할머니가 차린 밥상을 보고는 이렇게 김치가 가지가지인 밥상은 처음 본다.’ 하고, 외숙모집에 가서는 반찬을 한두 가지만 해주니까 이 집은 늘 이렇게 간소하게 드세요?’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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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범이 오늘 회의를 마치고 처가에 가 있는 처자식을 차에 싣고서 (장모님이 차를 내주시더란다) 우이동 집에 오니 저녁 9시가 다 됐다. 밥을 먹이려면 전쟁을 벌여야 했던 시우 녀석이 오늘 저녁은 스파게티를 아무 소리 없이 뚝딱 해 치운다. ‘오늘은 웬일로 잘 드시네.’ 하니까 이리도 맛있는데 당연하죠!’ 란다. 저리도 속이 깊고 유머 감각이 있어 걔를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동네 학교에 가던 첫날은 안 가겠다던 애들이 학교체험이 끝나는 오늘은 ‘1주일만 학교에 더 다니면 안 되겠어요?’ 하더란다. ‘한국학교가 참 재미있다.’는 얘기에 , 그렇구나!’ 라고 맞장구치는 내 말이 내 귀에도 좀 생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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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도의 더위에 택배 아저씨가 라면박스 크기 책상자를 3개나 어깨에 메고 왔다. 이런 날은 그분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물, 시원한 물이다. 지리산에서도 택배아저씨 차 소리가 나면 물을 한 컵 들고 나간다. 오늘 온 택배상자 속에는 가득가득 책이다. 아들 내외가 한국을 다녀가면 사가는 게 책밖에 없다.


시아가 먼저 읽은 책은 시우가 읽고 그 다음 그곳에 사는 가까운 친구들이 돌려 본단다. 두 애들에게 하루에 30분만 TV 시청을 허락하고, 게임은 20분씩 하니까, 나머지 시간은 나가서 뛰놀거나 음악을 하러 가거나 책을 보는 게 전부다. 새 핸폰은 중학교 2학년까지 안 사줄 생각이라고, 그때라면 각자가 돈을 모아 사도록 하겠단다. 그곳에서는 다른 애들도 그 나이까지 새 핸폰을 갖는 일이 흔치 않단다. 어떤 점에서 우리 엄마들이 너무 소란스러운 점이 있다.


두 손주가 서재에서 소파를 침대로 펴고 잠 들었다. 엄청 부자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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