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29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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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시간 내내 배가 노란 곤줄박이를 관찰하며 넋이 나가 앉아 있을까여자처럼 멀티가 못되고 모노로 태어나는 남자라서 나이 80이 되어서도 저런 바보짓이 가능한가 보다하기야 유럽 여행중에는 공항에서 비행기가 내리고 뜨는 걸 서너 시간 지치지도 않고 바라보고 있는 남자니 가능은 하다


큰아들 빵기가 다섯 살 적이었던가? ‘실컷 놀다 들어오라고 한 날 밤, 동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자정이 다 됐는데 가로등 밑에 걔 혼자 쭈그리고 뭔가 골똘히 지켜보고 있었다. 가로등에 날아들었다 전등에 부딪쳐 떨어지는 날파리들을 넙죽넙죽 잡수시는 두꺼비를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이!  그 아들에 그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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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오늘 중으로 분도출판사 재교쇄를 발송해야 한다 했으니, 저러다 말겠지 하고 나는 화계로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사러 갔다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내동댁이 군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화계에 기름 짜러 간다 해서 차에 태웠다. 집을 새로 지으며 몸이 많이 수척해졌다


딸네가 돈을 내서 집을 지어준다기에 소리도 못내고 처분만 기다렸단다. 짓기 시작하자 차도 없는데 1층은 뻥 뚫어놓고, 2층에 방을 들이고 있는데 아픈 다리로 2층 쇠계단 오르내릴 일이 깝깝하단다. "아들이 짓는다면 이래라 저래라 이바구라도 놀릴 텐데 딸 사위가 하는 일이라 말도 몬하고..."라는 탄식에는 여러 의미가 숨어 있겠는데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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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이 생기는데도 하나도 좋지가 않고 어서 빨리 죽어삐렸으면 좋겠다.는 토로로 보아 새집 건축에 몹시 빈정이 상했나 보다. "암만! 잘살라고 딸네가 지어준 집인데... 준공 떨어지고 나서 뽀도시 몸 하나 들어갈 방 하나 아래층에 들이고, 화장실 하나 넣거나 요강을 들이고서 만수무강하시라!"고 다독여 드렸더니, "딸도 그렇게 해준댔다."는 자랑으로 맘을 풀었다. 유림방아간 앞에 내동댁을 내려드리며 "기름 꼬시게 잘 짜 오시라." 하고는 화계 장터 승일상회에 열무를 사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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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 5일장터 한 가운데 자리잡은 가게다. 면소재지이면서도 장은 다 죽었다. ‘차편이 좋아지자 모두 함양이나 산청으로 장을 보러 가므로, 장날이라 하더라도 이웃 마을들에서 할메들 대여섯 명이 집에서 이고 나온 찬거리를 몇 가지 길가에 늘어놓고 파는 게 장날 전부란다


그런데도 장터에 하나 남은 채소가게 승일상회만은 저렇게 건재하고 잘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돌아가신 가게 여주인의 정성과 맘씨다. 아줌마가 생전에 인간관계를 잘 닦아 놓았고, 물건이 싱싱하고 좋으며, 뭣보다 값이 싸다! 읍내까지 안 나가도 되니 나까지 자주 이용한다아줌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셋째 딸 부부가 인천에서 내려와 장사를 할 만큼 장사가 잘된다젊은 사람이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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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을 건너 강뚝길로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흐르는 강물, 멀리 산이 서로 기대며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뚝으로는 금국이 찬란하고, 가끔 재수 좋으면 물고기 사냥에 넋이 나간 해오라비도 만나면 나 역시 넋 놓고 해오라비를 바라보다 돌아온다.

어제 담근 김치는 모두 진이네를 주어서(블루베리 수확철이라 그 집은 김치 담글 여유가 없다). 담 주에 시아네가 오면 먹이려고 또 김치를 담갔다. 작년 고추를 씨빼고 확독에 갈아 김치를 담갔더니만 두 손이 확확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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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지리산생명평화시민연대를 법인으로 만들려는데 보스코더러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며 준비회의를 하러 이 골작 환경운동가들이 휴천재로 모였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돈을 모을 재주도 없는 사람이니 나이가 젤로 많다는 이유로 그냥 그들의 그림자나 되어 줄 게다


열 명이 온다고 해서 누가 오나 궁금했는데 만나보니 다 아는 이웃들이어서  반가웠다. 깨어있는 주민들이 새 세상을 일깨워간다는 정성을 보여 20여년의 투쟁으로 지리산댐을 저지시킨 사람들이다. 실생활을 하는 50대의 운동가들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말마따나 '이웃아저씨 성인(聖人)', '이웃 아줌마 성녀(聖女)'라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간에 보스코랑 함께 벌여온 노고가 고마워 이탈리아식으로 저녁을 대접했더니 모두들 맛있게 먹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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