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18일 화요일,


보스코가 내 서랍을 싹 엎어서 속옷과 양말 등을 잘 정리를 해 준 건 고마운 일인데 다른 걸 정리하며 한데 모아 3층 다락에 올려다 두면 그때부터 나는 찾느라고 머리가 돈다. 6인용 식탁보가 여러 개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 혹시 치웠나 물었더니 자긴 본 일도 없단다. 며칠이고 찾다 지쳐버린 어느 날, 3층 다락에 올라갔다가 박스 하나에 식탁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보스코의 글씨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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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책바오로수녀님들이 보면 자지러지던 악필, 활자(活字)를 문선(文選)해서 한 페이지씩 조판(組版)하던 시절에 분도출판사에서는 보스코 원고의 글씨를 해독하는 문선실 담당자가 하나 따로 있었다는 그 글씨! 오죽하면 컴퓨터의 초창기 80년대에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그 비싼 컴퓨터를 보스코에게 사줬겠는가!


그로서도 도저히 오리발을 내밀 수 없는 그 팻말을 보고 내 글씨는 맞는데...” “여보, 부탁인데. 정리해 주는 건 고맙지만 제발 내 물건 좀 치우지 말아요.” 이 부탁을 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겨울에 덮는 오리털 이불을 싸서 다락에 올리려는데 집에 수십 장이나 되던 보자기가 없다. 하나도 안 보인다. ', 정리했구만.’ 서랍마다 늘어져 있어도 어디 있는지 내가 알고 찾아 쓰기 쉽게 놔두었으니 내 것 좀 건들지 말라고 다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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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몇 주만 지나면 또 소용없다. 그가 보기에 나는 늘어놓는 여자고 자기는 어쩔 수 없이 정리 할게다. 중학교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던 보스코는 군대 병영의 사물함처럼, 침실의 옷장과 자습실의 책상을 한달에 한두번 사감신부님에게 검열받던 습관이 남아 저런 버릇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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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대학에 있을 때 동료 교수 하나가 생각난다. 삐뚤빼뚤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놓고 사이사이에 메모지까지 엉크러져 있어 보다 못한 청소부 아줌마가 한번은 큰 선심을 쓰면서 큰 책, 작은 책, 메모지는 메모지대로 깔끔하게 정리를 해 드렸단다. 그런데 그 순둥이 교수가 얼마나 불같이 화를 내던지! 그 뒤로 청소부는 연구실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퇴직할 때까지 거미줄 쳐진 먼지구덩이에 부엉이 굴에 살다가 떠났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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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그 정도는 아닌데, 나도 제법 한 깔끔을 떠는데... 오늘은 열을 받아 테라스 청소를 했다. 그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마당에 내려가 시켜도 안하던 산죽이며 꽃이 진 섬초롱 등을 잘라내고 마당 정리를 했다. 이런 정리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이다.


엄엘리가 본당 모임에서 미리내성지를 가므로 책임자로 현지답사를 간단다. 요즘 내 머리엔 한가득 엄마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에 엄마를 내다버린 것 같은 죄책감에 늘 안절부절이다.


그미에게 성지 초입에 있는 실버타운 '유무상통'의 '대건효도병원'에 입원하신 울 엄마를 좀 찾아봐 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엄마와 도우미에게까지 간식을 준비해 가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얼굴도 예쁜 그미의 마음은 더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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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핼쓱해지고 힘이 빠져 보인다. 계속 주무셔서 지친 얼굴에 웃음도 울음도 아닌 미소. 엘리에게는 지금은 아파서 병원에 내려와 있지만 며칠 후 몸이 회복되면 위층 우리집으로 갈꺼다. 하시더란다. 한번 흘러간 물이 돌아올 수 없듯, 저렇게 엄마는 마지막을 향해 한발 한발 멀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는 침묵의 공범자다. ‘엄마 미안해요.’


내일 떠나는 빵기가 오늘 저녁식사를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일찍 집에 돌아왔다. 저녁 준비는 자기가 한다며 시장 길에서 불량식품을 잔뜩 사왔다. 떡볶이, 순대, 오뎅탕! 걔가 어렸을 때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시장통. 40년 전 천막을 치고 교실 책걸상 같은 식탁과 의자에서 먼지와 섞인 음식을 100원짜리와 바꿔 먹으며 애들은 컸다. 거기서 자란 아이가 그보다 더 열악한 난민촌에서 난민의 삶을 나눈다. 비는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고 아들은 오밤중에 짐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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