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9일 일요일, 흐림


비가 온다 했는데 날이 흐려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빵기가 밤늦게 온다니 좀 기다렸다 보고서 내려가고도 싶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보스코가 맘에 걸린다.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곳이 내가 갈 곳이다


서울집 위아래층 청소만 하고 정원에 나가 그동안 꽃들의 안부를 묻는다. 나무망까지 사서 넝쿨이 올라가게 마련한 으아리와 더덕이 흔적도 없다! 베이질, 파슬리, 범의꼬리마저 잎을 사그리 뜯어먹혔다! 벌레는 아닌 듯하고 집에 물먹으러 온 새들의 소행일까?피해자만으로는 가해자를 알 수 없다, 누구도 증언을 안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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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몹시 상하지만 기왕 없어진 것에 마음 쓰지 말고 남아있는 것으로 위로받기로 맘을 고쳐먹는다. 올해 처음으로 마당에 대추가 몇 알 열렸고 단감도 가지가 휘게 열렸다.


소피아씨 동생 레지나씨가 주님께로 떠나며 남기고 가는 이들에게서 고별인사를 받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엘 갔다. 레지나씨는 분홍색 홍조를 띠고 새악시처럼 꽃둘레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떠나보낸 슬픔보다 '하늘나라 새악시 참 이쁘다'는 생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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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도 문상을 와서 잠깐 보았다.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며 '힘들어 보인다' 걱정을 해 주었는데, 둘 다 비슷하게 요즘 강행군 중인 건 맞다. 문상온 사람들 여럿이 나와 미루를 알아보았다. 소피아의 페북에서 소개받아 내 일기를 읽고 있단다. 


열흘 전 쯤 소피아 남편 베아트가 꿈을 꾸었단다. 진분홍색 사랑스러운 새가 날아와 어찌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지 (부부가 미국여행준비를 마치고 떠나기 직전이었는데) 꿈에서 깬 베아트가 '암만해도 처제가 그동안의 고통에서 놓여나 훨훨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 하느님께로 갈 것 같으니 한국으로 행선지를 바꾸자' 하더란다. 그래서 소피아도 갑자기 한국엘 왔고, 딸의 산후수발을 하러 호주에서 급거 귀국한 언니까지 오니까 전세계에 흩어져 살던 자매들이 한데 모였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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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이 모두 모여오자 놀란 레지나가 “언니들, 나 이제 죽는 거야?" 묻더니만 이튿날 새벽 새처럼 날아가더란다.


소피아는 영혼이 맑고 섬세하여 꿈에 하느님이 많은 것을 보여주시나 보다. 오빠의 안타까운 얘기도 들려준다. 오빠가 20여 년간 주님께로부터 떠나 있다가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어 작심하고 성당을 찾아가서 고해실에 들어갔더니 사제가 사죄경(赦罪經)은 안 주고 심하게 야단만 치더란다. 그만 화가 나서 그대로 뛰쳐나와 버렸고 그 뒤로도 10년을 더 '쉬는 교우'로 지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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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오빠가 사업차 러시아에 갔다 죽음을 당했는데 아들의 시신을 본 친정어머니가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든 자들을 모두 용서하마.’ 하시고 주님의 공의로운 팔에 다  맡겨드리고서 다 덮으시더란다


얼마 뒤 오빠가 소피아의 꿈에 나타났기에 목욕하라고 샴푸를 주었더니 '나는 이제 깨끗해져 샴푸는 필요 없어.' 하더라나? 아들을 해친 자들에 대한 어머니의 '조건 없는 용서'가 아들의 냉담도 하느님께 용서받았으리라는 것이 여동생 소피아의 믿음이다.


병원 지하당에서 성령강림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신부님도 강론에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자 사람들이 모두 다시 태어났다. 성령으로 태어나면 용서받을 수 있고 또 용서할 수 있다.”고 하던 말씀이 한 줄기의 빛으로 꽂혀온다. 아들을 해친 자들마저 용서하는 어머니, 냉담을 풀겠다고 고해실을 찾아온 신자를 용서 못하는 사제둘 중 누가 사람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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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집에 남아 있어서 공소에서 축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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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어머니(루치아)께서 돐이 갓 지난 막내딸부터 중1짜리 큰아들까지 고만고만한 다섯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죽이고 싶도록 미운 남편(처자식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도망가 버린)을 두고, 하느님, 다 용서합니다!’ 라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는 보스코의 기억. 성령의 이끄심이 아니면 한 여인으로서 할 수 없는 한 마디였다. 그 용서가 하느님께 어여삐 받아들여져 보스코네 네 형제는 살레시오 신부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고, 양념딸 막내는 잘 사는 집에 입양되어 유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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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행 1시 버스를 탔는데 3시가 좀 넘어 빵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아들 얼굴이라도 보고 막차로 올 걸...’ 내 차를 몰고 갔더라면 차를 돌려 서울로 가련만 버스라서 그리도 못하고... 그래도 늘 씩씩하고 든든한 아들이니까 보고 싶어도 며칠만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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