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8일 토요일, 맑음


어제 밤에도 머리가 아프다며 이탈리아 약 OKI를 한 봉지 타 먹고 겨우 잠든 보스코가 걱정이 되어 김원장님 부부와 만나기로 한 무주 산골영화제를 어찌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절히도 김원장님이 먼저 전화를 했다


보스코가 머리가 아프다니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정하지를 못했다는 내 말에 의사를 두 명이나 동시에 만나 진찰을 받을 텐데 무슨 걱정이냐?”는 기막힌 답변. “아파도 약도 안 주는 돌팔이 아니에요?‘ 했더니 그 말에 정색을 하며 하찮은 병에 한주먹씩이나 약을 주는 의사가 돌팔이랍니다. 명의는 약 없이 고쳐요.” 맞는 말 같다. 약의 분량으로 명의를 따진다면 배부르게 약을 지어주는 우리 동네 보건소 소장님이 최고의 명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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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와 김원장님의 얘기를 엿듣기라도 한 듯 다행히 아침에 보스코는 멀쩡했다. 그래서 간식꺼리를 챙겨 1130분 휴천재를 나섰다. 무주는 휴천재로부터 80km의 거리로 1시가 못 되어 무주 군청에 도착했다. 군청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곧장 무주에서 이름났다는 어죽집에서 김원장님네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모두 배고픈 시간이었고 어죽은 참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고서도 우리가 방안에서 지체하는 사이 문밖에는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집 맛의 척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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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싸간 커피와 간식은 군청 정원에서 먹었다. 사람-자연-농촌-마을공동체를 먼저 생각한 '건축가 정기영'의 작품 중 하나로 상을 받았단다. 최소한 우리 넷이 토요일 오후에 맘 편히 얘기와 간식을 나누게 해 준 것은 주민을 위한 여유 공간을 마련했다는 말이고, 그 점에서는  그 건축가 우리한테서도 상을 받을 만했다.


요즘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문영석 교수님의 FUTURE. 교육혁명으로 미래를 열다라는 책 내용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다. 미국 살던 초딩이 한국에 와서 사촌과 함께 다녔던 미술학원의 추억이 환상적이어서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더라고, 꼬마 혼자 그것도 저녁에 슈퍼마켓에 가서 쇼핑을 한 경험도 환상적이었다고 얘기하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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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섐과 김원장님은, 아이들을 아무리 엄마 욕심대로 상자 속에 쑤셔 넣지만 애들은 상자곽 속에 갇혀서도 놀이를 찾아낸다고. 아스팔트의 벌어진 틈새의 실낱같은 공간에서도 민들레가 꽃을 피우는 경이로움처럼 아이들에게 마련된 신의 손길은 우리 어른들의 염려와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다고, 아이들은 신의 영역에 속한 생명들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게 도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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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에 무주 산골영화제에 들갔다. 한 시간을 젊은이들 틈새에 끼어 줄서 기다린 끝에 선착순으로 들어가 이장(移葬)”이라는 영화를 무료로 감상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남은 가족은 딸 넷, 아들 하나, 손주 하나. 고향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푼수로 자란 막내아들(‘아이고, 우리 큰아들’), 그 사내한테서 임신하여 누이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당돌한 처녀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치고 큰어머니 외에는 누구도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인물설정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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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상처 입어서 병든 인간, 그래서 타인에게도 상처밖에 줄 게 없는 숙명, 그게 가족이다. 살아서도 도움이 안 됐고 죽어서까지 가족에게 분란의 씨를 남긴 아버지...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네 딸이 서로 상처를 파헤치는 줄거리였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가족인데? 하느님도 때로는 홧김에 눈물까지 흘리시면서도 인류를 지상에서 몰살시키지 못하시는 까닭이 당신이 '아버지로서' 이루신 가족이기 때문이 아닐까? 상처 입은 그대로, 죄짓는 그대로 인간을 받아들이시는 수밖에 없는 인류가족이라니...


540분에 무주를 떠나 함양 발 7시 서울행 막차에 올랐다. 오늘 새벽에 하느님 품으로 떠난 막내여동생의 임종을 지켜주러 멀리 스위스에서 달려온 친구를 만나보고 올 생각이다. 보스코도 군내버스 막차로 읍에서 집으로 들어갔다


무주를 지나자 아스팔트가 젖어 있다. 저 길처럼 슬픔에 젖은 우리 인생이 그래도 희망과 기다림으로 채워지는 이치가, 그래도 남은 자들은 살아가는 용기 신기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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