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09일 화요일, 하루 종일 비뿌림

 

어제 오늘 이틀간이나 진이네 속을 썩이더니 곶감깍기에 공공근로 아줌마 두 사람을 배당받았다. 한 사람은 동강에 살고 한 사람은 오봉 가까이 산다. 같은 동네 사람들을 보내면 오가는 수고도 덜 들텐데 하여튼 면직원이 자기 차로 두 사람을 실어 왔다. 공무원들의 사정도 있겠지만 우리 생각에는 그들이 조금만 머리를 써도 돕는 사람이나 도움받는 사람이나 훨씬 편리하고 합리적일 것 같은데 그 머리를 움직여주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주인 내외까지 합쳐 일손이 일곱 명이나 되어선지 감동에 사람이 가득한 느낌이다. 공장도 아주 잘 돌아간다. 두 아주머니가 말없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2층 덕장의 일이 바빠져 가밀라 아줌마는 2층으로 승진했다. 나도 점심을 준비하는데 덩달아 신나고 타지 손님까지 있어 더 마음을  쓰게 된다. 덕장이 매단 곶감줄로 가득차고 아랫층도 활기차면 아주 명랑한 일터가 되곤 하였다.

 

진이네 덕장 안 풍경 (이엄마, 가밀라아줌마, 주인 내외) [면에서 보내준 준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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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카레라이스에 미역국으로 했다. 아쉽게도 근로 온 아줌마 가운데 한 사람이 밥과 김치 외에는 아무것도 못 먹는다. 성격은 아주 순하게 생겼는데 먹는 것을 보니 비린 것도 고기도 일체 못 먹는단다. 채식을 하느라 고생 많이 했겠다.

 

무엇이든지 잘 먹고 입에 선 것도 먹어보는 사람은 진취적이고 모험심 많고 개방적이라고 들었다. 그 대신 무엇무엇은 안 먹고 가리는 사람은 그만큼 까다로운 성미에 대인관계도 힘들 것 같다. 우리 보스코만 보더라도 먹어 본 것에만 젓가락이 가지 새로 보는 것은 잘 손대지 않는다. 그나마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15년간 기숙사 생활과 단체생활을 한 결과가 그렇다. 아들들 말마따나 "신세는 고아나 마찬가지였는데 식성은 부잣집 도련님"이다.

 

80년대 초 로마에 살 적에 빵기나 빵고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아이들의 엄마가 먼저 나서서 "얘는 이것저것 저것이것은 먹지 않아요."라면서 싫어하는 음식의 리스트를 대학노트 한 페이지 분량으로 늘어놓곤 하였다. 이탈리아 엄마들의 극성도 대단하다. 아이들은 엄마의 그 리스트에 의해서 그 음식들로부터 영영 멀어져가고 아마도 일평생 그 음식과는 적대관계에 놓일 것 같다.  그래서 그애들의 엄마가 간 후에 교묘하게 요리해서 애들에게 그 음식이라 하지 않고 먹이면 잘도 먹곤 하였다. 그런 다음 아이들 엄마에게 전화해서 그 음식을 이러저리 요리해서 먹였더니 잘 먹었다고 하면서 편식을 고쳐주도록 유도하였는데 그 뒤의 일은 모르겠다.

 

   진이네  덕장 가득 매달린 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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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30분에 퇴근하는 공공근로 아줌마들을 내가 차로 모셔다 드렸다. 비가 부슬부슬 오기 때문이었다. 동강에서 한 분이 내린 다음, 오봉 아주머니 얘기를 들으면서 갔다. 아들이 이혼해서 인천에 살면서 전기공사로 생업을 삼고 있고, 손자 두 명을 자기가 키운단다. 하나는 중학교 1학년, 하나는 이제 아홉살이다. 큰애는 저녁 9시나 되어야 집에 오고 작은 놈은 집에 있으니까 자기가 일을 나가도 걱정이란다. "왜, 일을 나가지 말고 아이를 돌보시죠?" 하니까 애들 과외비도 대고 살림도 해야 한다면서 한숨이 깊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한평생 일이라는 것을 안 해 보고 동강에서 고기나 잡다가 놀다가 하면서 살았단다. 마지막에 가서는 면사무소가 나서서 하다못해 산불감시원이라도 해 보라고 맡겼는데 그것도 얼마 안 해 보고 돌아가셨단다. 이것을 한 사람의 팔자라고 해야 하나 여자의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집안식구 돌보는 일만 아니고 손수 일터에 나서서 살림을 꾸려가는가? 참 대견한 아주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커틴 밖으로 내다 보니 진이네 부모는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덕장에서 도란도란 꿀벌처럼 일하고 있다. 힘들기는 하지만 참 행복한 부부다. 서로 수고를 인정하고, 남편 성격 유순하고 능력있고 발 넓고 사교성 좋고, 아내의 눈썰매나 솜씨, 마음씨가 뛰어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