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8일 일요일. 날씨 하루 종일 부슬비가 오다말다

 

부슬비가 부슬부슬 하루 종일 무슨 부스러기처럼 내렸다. 그래도 우리 배추밭에는 안성맞춤의 단비다. 아니면 보스코가 또 싫다는 얼굴로 호스를 끌고 내려가야 했을 텐데...

 

공소예절이 오늘부터 7시 반이라 좀 한가할 것 같았는데 오늘 아침도 헐레벌덕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내가 거의 맨 꽁지로 들어가는 편이므로 사람들이 나올 때 편하라고 신발들을 돌려 놓아준다.  (본인들은 "우렁이 색씨"가 해 준 걸로들 알까?) 이제 털신의 계절이다. 어떤 신발은 곶감집에서 왔다는 표로 여기저기에 감껍질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우리 이장님의 열성은 오늘도 본의 아니게 공소예절 망치는 심술이 되고 말았다. 지난 주일에 7시 공소예절 할 때도 거의 10분간 방송을 해서 독서들을 망쳐 놓았는데 오늘은 7시 30분에 시작하더니 정확하게 (내가 분심들어 시계로 쟀으니까) 25분간을 방송했다. 방송에는 우리가 아는 이름들로 나왔다.  "우리 동네가 22개 부락 가운데 맨꼴찐데여 오년전만 해도 이런 일이 한 건도 없었는데여..." 얘기는 소설적으로 이어진다.

 

어제 저녁에도 방송이 나오길래 진이엄마가 내일 아침에 하는 대신에 토요일 저녁에 나와 다행이라고 했는데 예상은 빗나가 오늘 아침에도 재방송이 나왔다. 이장님이 주민들 때문에 몹시 열받았나보다. 열성있는 이장님인 것은 사실이다. 오늘 저녁 7시 30분에도 또 방송을 한다. 항의를 받았는지 호명은 생략 한단다.내일 중으로 다 해결해볼 참인가 보다.

 

오늘 진이네 감동에는 이엄마, 가밀라 아줌마, 강수영씨네 아줌마까지 와서 일손이 많았다. 진주의 대학생 진호도 아빠의 일손을 도우러 모처럼 집에 왔다. 점심상은 아홉 식구여서 두 상으로 차렸고 식구가 많으니까 모두들 식욕좋게 잘들 먹는 모습을 보니 식사를 준비한 나도 덩달아 흐뭇하였다. 

 

진호는 저녁 7시까지 일하고서 막차로 읍내로 나갔다. 진주에 가야 하니까... 목욕하고 드라이하고 내가 마련한 카레라이스 먹고 약간의 용돈을 챙겨 빗속에 내려가는  아이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 말고도 떠날 곳이 있는 아이들은 늘 행복하다(부모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말이다). "고추 딸랑" 아이가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고 진주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식비를 감당한다니 얼마나 대견한가? 엄마는 학비와 방값을 대 주나보다. 

 

침실 커튼 사이로 내려다 보니 진이 엄마와 아빠는 오늘도 밤 11시까지 덕장에서 감을 걸고 있다. 일손이 많아서 깎아둔 감을 오늘 중으로 걸어야 한다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러버린다고... 덕분에 아래서 올려봐도 진이네 감동은 거의 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