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맑지만 연무로 몹시 흐리다가 지리산 가까이 오니까 걷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침대 시트 갈고, 시트랑 흰빨래는 이층 세탁기에 삶아 빨고, 총각의 것인 아래층 세탁기에다는 우리집 색깔있는 세탁물 넣어 돌리고, 쓰레기 통마다 모아서 분리수거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꽃 옆에 묻고, 아침먹고 나서 짐을 실으니 오전 11시 반이었다. 지리산으로 출발! 오나가나 짐정리하는데는 이력이 났고, 소나타든 전에 몰던 마티스든 언제나 트럭만큼 한짐 실어서 가는 것도 여전하다.

 

서울을 빠져 나와 한참 달려도 어쩌면 하늘이 그렇게도 뿌연지 도무지 앞이 개운치 않다. 대전을 지나고 금산을 지나니까 하늘이 조금씩 맑아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지리산이다! 저런 서울 땅에서 뭐가 좋다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동정적 푸념도 생긴다.

 

죽암 휴게소에서 보스코는 짬뽕 밥, 나는 돈까스를 먹었다. 가만히 보면 이런 휴게소 음식은 생존을 위한 먹는다는 느낌이다. 좀더 정성을 들여 준비할 수 없을까? 그래도 싸간 과일과 카프치노에 덩킨도너츠 한 조각씩을 먹으니 "풀코스" 같다.

 

휴천면사무소앞 보건소에 들러 보스코 어깨 걸린데 약을 짓고 나니까 감기 예방 주사까지 놓아주었다(딱 2인분 남았다는데 우리 둘이서 맞았다). 보스코는 65세를 넘는 "어르신"(내 원 참!)이어서 공짜고 나는 7500원을 냈다. 약값은 1000원. 시골 인심은 약도 배부르게 많이 준다. 새로 보는 곱상한 공중보건의는 매우 친절하고 또 귀여운 얼굴이다.

 

저녁식사 준비중인데 사부인의 전화가 왔다. 지난 추석 때에 사돈과 스위스에 가서 3주간을 보내면서 딸네 사는 모습을 보고 귀국하여 막 비행기에서 내리신 참이였다. 사부인의 외손주 자랑 얘기 중에 시아라는 녀석이 남자는 알아보고 외할아버지에게는 고분고분하는데 여자들, 예컨데 외할머니나 제 엄마에게는 뜻대로 안 되면 떼쓰고 꼬집고 하더라면서 친할머니가 데려다 버릇 좀 들여야겠다는 말을 보태셨다. "외손주는 업고 친손주는 걸리면서 외손주 발 시러우니 [친손주더러] 빨리 가잔다."는 외할머니의 말씀이었던만큼 "요 녀석이!"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7월 지리산에 왔을 적에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몹시 순하고 착하게 굴더니 엄마가 오자마자 엄마에게 폭군으로 변해버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당장 스카이프로 빵기에게 전화해서 며느리더러 애기 버릇 좀 들이라는 요지의 잔소리를 해대고 나니까 영 마음이 께림칙하다. 사실 엄마 아니면 우리가 한 평생 누구에게 떼를 쓰고 응석을 부리겠는가?

 

아랫집 진호가 세살 적에 우이동 집에 왔을 때였다. 가구마다 서랍을 열어 사다리를 만들어 다람쥐처럼 안 오르는 데가 없었고 손 안 대는 물건이 없었다. 그해 성탄 때에 다시 서울로 오길래 크리스마스 츄리를 치워야 하나 마음졸였는데, 웬걸, 나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니까 떼쟁이든 개구쟁이든 한 철인데 말이다.

 

엊그제 우이동집 옆 서광빌라 아이가 집을 나오더니 골짜기에 뭔가 홱 버리고 들어가려고 해서 내가 불러 세웠다. 5학년짜리였다. "뭐 버렸어?" "음식물 쓰레기요." "너네 엄마가 음식물쓰레기 분리통에 넣으랬지?" "네." "그럼 그 봉지 주워다 음식물쓰레기통에 집어 넣어. 앞으로 또 그러면 이 빌라 사람들에게 죄다 얘기하고, 그래서 빌라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 그냥 버려진 쓰레기는 모조리 네가 버린 것처럼 생각하게 될 거야. 알았어?" "네." 이렇게들 착한 것이 아이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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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24 (서울 우이동) 시아의 돐사진  (눈에 낀 장난끼가 보통 아니다)

 

시아 애비 빵기도 생후 6개월이 되니까 울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500미터 떨어져서도 들렸다. 세살던 터여서 주인집 안주인이 쫓아와 잔소리할까 봐 애기 버릇을 고치겠다고 아예 이불장 속에 넣고 문을 닫고서 실컷 울라고 했다. 조용해져서 열어보면 울다가 잠들어 있곤 하였다. 나도 젊은 엄마여선지 참 모질고 담이 컸다. 그래서 빵기의 우는 버릇이 잡혔는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약간 또라이 짓을 하면, 깜깜한 이불장 속에서 울다 지친 "정신적 외상" 때문이라고 내게 푸념하던 때가 생각난다. 

 

재작년 우이동 집에서 시아 돌잔치(성탄 전야에 태어나서 세례명이 임마누엘이다.) 해 줄 때였다. 집안에 차려진 크리스마스 츄리에 주렁주렁 달린 방울들을 보더니만 만져도 될지 안 될지를 한 참이나 헤아리는 듯했다. 스위스에서 유아원에 다니기 때문에 "공중도덕"에 대한 교육이 어느 정도 몸에 배었을 성 싶었다. 그러다 내 눈치를 보면서 만지기 시작하길래 이 할머니가 목소리를 착 깔고서 "시아, 안 돼!" 했다. 그랬더니만 자존심이 몹시 상했는지("아무러면 큰손주가 자기 돐잔치에 츄리 좀 만졌다고...") 한바탕 울고서는 다시는 ("치사해서")  츄리를 안 만졌다. 애비 말로는 시아는 "상황판단을 정확하게 하는 아이다. 그런데 착하지는 않다." 사부인의 촌평으로는 '조금 영악한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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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의 동시집의 제목이 『콩, 너는 죽었다!』라고 되어 있다. 시아에게 동생이 생기거나 해서 시아가 스위스를 떠나 할머니집에 와서 얼마 지낸다면(이게 할아버지의 소원이다.) 이 할머니가 확실하게 "군기"를 잡아 줄 테다. "시아 요놈, 우리 집에 오기만 해 봐라. 확실하게 반듯하게 버릇을 잡아 주마." 하고 벼르는 참이다. 물론 할아버지의 "손주-헬렐레-증상" 때문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지만....

 

 

콩, 너는 죽었다

               -  김 용 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튀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