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날씨 맑음

 

새벽 3시경에 대문인터폰 소리에 잠을 깼다. 도둑이 집을 털기 전에 집주인이 있나 알아보는 짓인가 하여 "누구세요?"라는 응답을 하였다. 소리가 없었다. 자리에 눕자마자 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인터폰이 계속 울려 서재 창밖으로 내다보니 흰잠바를 걸친 안경 쓴 여자였다. 잠시후 아래층 총각이 나가고 대문밖에서 기다리던 여자가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다시 고요가 왔다. 그의 여자친구 같았다. "주인 내외가 와 있으니 집에 찾아오지 말라는 총각 말에 혹시 딴 여자가 생겼나 하여 확인차 온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새벽잠이 들었다.

 

그 총각의 여자친구는 알콜 때문에 고생한단다. 학교 다닐 적에 MT에 간 친구가 죽는 것을 보았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소심하게 자라온 터라서, 그런 공포와 슬픔을 잊기 위해서 조금씩 마시고 잠을 청하던 것이 지금은 굴레가 되었나 보다.

 

총각은 빵고와 동갑인 서른두 살이고 여자는 한참 연상이다. 따뜻하고 듬직한 총각에게 마음이 끌렸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약을 먹고 입원을 해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라서 그 총각으로서는 여간 마음 고생이 심한 듯하다. 어제밤 수녀님 얘기에서 "사람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서 죽는 길밖에 없다."는 피정강론을 들었다는데.... 예수님도 그 숱한 병든 여자들을 치유해 주시었을 지언정 당신이 데라고 사신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없는 몸과 맘을 안고서 처녀는 안타까운 사랑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밤중에도 그를 찾아온 듯하다. 가난한 우리 인생들의 가난한 사랑 얘기들이다.

 

오후에는 우리동네 통장을 만났다. 478-30번지 재건축부지에 주인없는 토지가 다섯 평인가 나왔으니 도로로 확보해야 한다고 통장을 설득하고 진정서를 작성하여 그에게 주고 내 이름을 대표로 내세워서 연대서명을 받아 도봉구의회 이금주 의원에게 제출하라고 시켰다. 문서는 보스코가 작성해 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중고로 구입한 린나이 랜지 부품을 구입하고, 소니 디카의 USB 캐이블을 25000원에 사고, 경동보일러 아저씨를 불러 더운물 줄기가 갑자기 작아지는 이유를 점검케 하고, 그것도 안 되어 동네 보일러 아저씨를 불러 감압벨브를 교체케 하였다. 그래도 아직 물줄기가 가늘다.

 

보스코는 명동성당에서 6시부터 집전되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미사에 참석하러 갔다가, 여의도 성모병원에 들러서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문규현 신부를 면회하고,  환경운동가 김두석 선생을 만나고서 10시반 경에 돌아왔다. 보스코의 표정으로 미루어 문신부의 상태가 어려운가 보다.

 

저녁 7시반에는 말남씨가 찾아왔다. 수유리 갈멜수녀원 앞 나대지 1100평을 공원녹지로 유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너무도 힘들고 어렵단다. 그게 무너지면 그 일대의 삼각산 자락이 온통 개발된다. 다행히 오늘 1억이나 되는 환경평가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그 지역의 환경평가를 해 주겠다는 언악을 어느 교수에게서 듣고 돌아와서 좀 고무되어 있지만 무척 힘들단다.

 

제 앞가림이나 편하게 하면서 잘 살아오던 자기더러 자연을 지키고 착한 일을 하는데 혼신을 다해 끝까지, 이길 때까지 싸우라고 꼬득이고 가르치고 훈련시킨 사람들은 정작 우리 부부인데, 우리는 지리산으로 떠나버리고 자기 혼자 남아 외로운 싸움을 하게 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기를 그런 투사로 만든 "생산자 책임"을 나더러 지라는 호소였다.  소송을 맡은 관선변호사를 갈아치우고 환경문제에 발벗고 나서주는 김형태 변호사를 모시게 도와 달라고 애걸하여 보스코가 들어오는 대로 의논키로 하였다. 용감하고 끈기있고 구변좋고.... 우리가 건진 후배요 투사다.

 

저녁 9시 50분경 본당수녀님들이 놀러 왔다. 빵고 삶아 주라면서 계란 한 판과 황태구이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서로 좋아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늦게 성당으로 돌아갔다. 늘 따사로운 빛살처럼 그분들이 곁에 있어서 내 삶은 오나가나 이토록 넉넉하고 아름답다. 지리산 이웃들이 벌써 몹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