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4일 토요일 맑으나 서울 하늘은 황사가 끼어 있었음

 

아침에 일어나 맑은 공기 속에서 뜰의 감나무에서 단감을 땄다. 저번 감이 파랬을 적에는 눈에 잘 띠지 않아서 여나믄 개나 열였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빠알갛게 익어오니 족히 300개 정도는 되어 보인다. 아랫집으로 내려간 가지에 맺힌 열매는 그집 아줌마더러 띠먹으라 하였으므로 우리집 쪽으로 달린 단감 열댓 개를 따들고 미아리의 "스승예수제자수녀회"를 찾아갔다.       

 

로마에서 친하게 지내던 허미강(파치스) 수녀님이 치아 치료를 겸해서 한국에 들렀으므로 만나보고 싶었다. 엊그제 지리산을 다녀간 박글라라 수녀님도 파치스 수녀님을 만날 생각이었으므로 다시 합석할 기회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파치스 수녀님은 경상도 영주에 살던 부모님이 일본 강점시대에 고향땅을 빼앗기고 (땅을 차지한 일본놈들이 원래 땅 주인인 부모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소식에) 목숨을 건지려 일본으로 건너가셨단다. 거기서 일곱 자녀를 두셨는데 수녀님이 열두 살이었을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곱 자녀를 혼자서 키우신 어머니의 고생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단다. 로마에사 간혹 나에게 가족사를 이야기할라치면 그 눈물겨운 사연에 우리 둘다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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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파치스 수녀님과                                                   차끼아라수녀, 릴리안 수녀, 허파치스수녀와 함께

 

셋째 딸이던 수녀님은 본당신부님의 추천으로 일본에서 "스승예수제자수녀회"에 입회하였고, 처음에는 조각을 하다가 이탈리아로 가면서 이콘화를 그리고 있다. 지금은 여러 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하며 그분의 작품( www.iconecristiane.it → iconografi → Huh suor M.Pacis)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가 귀국할 임시에 빵고의 서품을 앞당겨 축하하는 뜻에서 성요한 보스코와 성도메니코 사비오의 이콘화를 그려서 선물해 주셨다. 아직은 지리산 서재 입구에 걸려 있다. 살레시오회에서도 유일한 두 성인의 이콘화일 것이다. 빵고가 서품을 받으면 평생 가지고 다닐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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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녀님이 빵고에게 선물한 이콘화                       허수녀님과 박글라라 수녀님 일행과  함께

 

수녀님은 만능의 재주꾼이지만 워낙 부실한 건강 때문에 채소와 건강식품으로 자기건강을 보전하고 있고 남들의 질병도 참 많이 고쳐주고 있다. 내 위통도 알로에와 감잎가루로 치료해 주었다. 그분이 로마 수녀원 채소밭에서 기르는 모든 채소와 약초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해 주는 약초가 되고 있다. 우리가 지난 번 로마에서 지낼 때는 내가 고국에서 씨앗을 가져다 수녀님 드리면 근사한 열무, 배추, 상추, 아욱, 쑥갓이 되어 돌아왔고 그것을 가져다 감치를 담그고 나물을 만들어 로마에 사는 바오로 가족의 축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우리가 귀국할 임시에 채소밭 한 구석에 키위밭을 만들고 싶다고 하길래 거든 적이 있다. 키위는 잘 자라고 있고 5년 되면 열매가 수확되니 로마에 오거든 찾아와 맛보라는 당부도 하였다. 그분은 내가 드린 대장금 연속극을 보면서 우리말을 익히기도 하였다. 교포로 자라면서 일본에서겪은 그 많은 아픔을 예술과 수녀원 영성으로 승화시켜 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때마침 바티칸 전화국에서 일하는, 같은 수녀회 차글라라 수년님도 일시귀국해 있어서 환담을 나누었다. 뒤이어 글라라 수녀님, 벨라데타 수녀님, 두 분을 모시고 온 사진작가(외교관이던 남편이 스페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보스코는 기억하고 있었다.)가가 합석하여 담소하다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