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잔뜩 흐리고 으시시한 날씨였음

 

날씨가 갑자기 차지고 비온 뒤라서 앞산 단풍은 훨씬 화사해졌다. 가을도 깊을대로 깊어지고 새빨갛고 샛노란 단풍들은 다지고 갈나무들만 멀찌;감치서 그래도 멋진 자태를 보이고 있다. 진이네 감깎기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날씨 탓으로 다른 지리산 멧돼지들은 찾아 보지 않아서 근황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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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차려 감동 식구들 먹이자마자 급히 오후 2시에 <함양 농림식품연구소>라는 곳의 개소식에 갔다. 몸도 마음도 못 간다고 버티고 있었는데 무려 6통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에 K.O. 당하고 보스코마저 "그냥, 가줘요. 너무 무게 잡지 말고."라고 떠밀어 마지 못해 나간 셈이다.  복음서에도 이웃 친구가 저녁 늦게 빵을 얻으러 왔는데(그 사람도 친구가 갑자기 들러서) "나 지금 내 가족과 함께 침상에 들었으니"(아마 흥부네처럼 한 이불로 온 식구가 다 덮고 잤나보다.) 귀찮아 못 주겠네."라고 거절하는 얘기가 나오지 않던가? 그렇지만 하도하도 졸라대니까 하는수없이 일어나 빵은 떨어지고 없어서 적어도 빵 구울 재료라도 내주지 않았겠나?

 

서상에 세워진 농림식품연구소는 토양을 살리기 위해서 그동안 써왔던 화학비료와는 전혀 다른 유산균 비료를 생산하여 그것으로 생산된 식품으로 소비자도 살리고 자기들도 살아남으려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고 설명했다.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화학비료를 장려하여 생산성을 고취시키던 시대가 뒤돌아봐진다. 어머니인 땅이 자식들을 굶주림에서는 살려냈으나 땅 그 자체는 지금 얼마나 닦달당하고 병들어 있는지 모른다. 거기서 난 식품으로 대지의 자식들인 우리마저 병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선각자들은 50년전부터 소리소리질렀지만 그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제서다. 참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귀도 벽창호같아지는 것이 인생들이다.

 

행사가 끝나고 서상까지 나오는 길에 김인식 선생집에를 들렀다. 주인은 함양 나가고 없고 감동에 올라가 보니(함양군에서 제일 예쁜 감동이다.)  곶감에 곰팡이도 났고 땅바닥에 떨어져 딩구는 꽂감들이 무척 많았다. 덕장 속에서 혼자 돌아가는 선풍기와 석유난로를 보고서 주인이 얼마나 애를 태우고 있는지 알만 했다.

 

오늘이 "뻬뻬로 데이"라고 해서 돌아오는 길에 서너봉지 사가지고 와서 우리 식구들과 뻬뻬로 파티를 했다. 어느 장사꾼이 만들어 애들 주머니를 터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함양 거리 아이들이 저마나 한아름씩 사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집에 오니 무우가 한 상자 택배로 와 있었다. 지난 여름 송총각과 함께 휴천재를 다녀간 최정일이라는 젊은이가 충남 홍성에서 농사를 배우고 있는데 무우가 잘 돼서 한 박스 보냈다는 사연이었다. 체칠리아씨네 것 만큼 크거나 이쁘지는 않아도 달고 맛있다. 내게까지 한 상자 보낸 젊은이의 정성이입맛으로  전달되어 온다. 내가 키우다 보니까 내 배추, 내 파, 다른 채소들도 한 포기 한 포기 다 귀여운 자식 같아서 남의 것도 그만큼 귀하고 소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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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날씨가 추워졌다. 여름옷을 겨울 옷으로 바꾸는 중이다. 진이네 일로 나까지 덩달아 움직이다 보니까 보스코가 자기 옷은 자기가 챙겨서 자기 옷장에 바꿔넣고 있다. 이엄마가 어제 날짜로 감동일을 그만두었으므로 "나는 언제 짤려?"라고 물었더니 진이엄마가 이번주 토요일까지는 출근하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