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대체로 흐림.

 

10월도 마지막 날이다. 아침을 먹으려는데 로젠택배가 담배가게에 갖다 놓은 책을 빨리 가져가라는 전화가 견불 사람에게서 왔다.  문정리 287번지 책을 백연에 갖다 놓고서 주인더러 알아서 찾아가게 만들다니 참 써비스치곤... 다행히 그 집 주인이 두세 차례 우리한테 전화해서 책을 찾아가라고 했는데 그 집 주인도 타지에 가고 우리도 한 주간 서울에 가느라 이제사 해결을 보기로 하였다. 괘씸해서 그 회사 소비자실로 전화를 했더니만 배달기사가 앞으로는 꼭 집으로 갖다 놓겠노라고 사과전화를 해 왔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해대면서... 시골에서는 집주인이 논밭에 나가 있어서 길가의 편한 가게에 맡겨놓고 가는 일이 흔하지만 문하마을의 물품을 견불로 갔다 놓고서 찾아가라는 것은 말 도 안 된다. 차로도 10여분 걸리는데...

 

오후에는 어젯밤에 만든 깍두기를 가져다 줄 겸 체칠리아씨네에 차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작은 딸이 친구랑 내려와서 덕장준비를 돕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예쁜 딸 하나 낳았더라면 하고 부럽다. 성씨 집안이  워낙 딸이 귀한 집이기는 하지만... 그 딸이 사온 케익에 곁들여(엄마한테 케익도 사오니 맘씨도 참 예쁘다.) 차대접을 받고 나왔다. 배추밭을 둘러 보니 탐스럽게 자랐다. 이엠비료 덕분이라나....

 

    체칠리아씨 배추밭

DSC08227.jpg    DSC08230.jpg

 

어제 못 찾아간 석형씨네 집터에 올라갔더니 기초공사 콘크리트를 다 부어 놓았다. 50전은 친 것 같으니 5층도 올리겠다. 마침 나여사가 와서 그집 텃밭을 돌아보았다. 배추는 모진 겨울을 이겨낸 봄동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가뭄에 질긴 목숨을 건지고 이제 막 땅을 딛고 일어서는 품이어서 이러다간 내년 가을에나 김장을 해야 할까 보다. 무우는 이기자 말대로 "햠양 장에다 내다 팔아도 될만큼" 잘 자라 있었다. 나여사가 두 개를 뽑아 주길래 채김치하려고 들고 왔다.

 

   도정 새 집터 아래에 가꾼 나여사네 배추밭

DSC08244.jpg    DSC08242.jpg

 

김교수네 집으로 올라가 보았다. 갈나무 낙엽이 길에 수북하게 쌓여 있어 영화에서 벤허가 3년만에 돌아온 집안의 풍경을 연상케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풍경을 "렌조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만조니의 소설 "약혼자"의 등장인물 렌조가 먼 훗날 돌아본 자기집 정원풍경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집주인이 비워 놓은 집은 한결 쓸쓸한 마음을 일으킨다. 더구나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이 비운 자리는 더 공허한 법이니까....

 

김교수 내외의 부재를 알리는 오르막길과 뜨락의 가랑닢

DSC08231.jpg    DSC08239.jpg

 

배추밭을 돌아보니 이기자네서 얻은 50여 포기를 심었다는데 스무 포기 정도 살아남았고 속 들라고 묶어준 배추도 여나믄 포기 되었다.

 

주인의 손길이 아쉬워 거의 단식투쟁에 가까운 김교수네 배추밭  

DSC08236.jpg    DSC08238.jpg

 

집집이 배추밭을 둘러본 결과는 지리산 멧돼지들 집집이 배추를 심어보겠다고 나선 "실험정신"들이 높이 살 만하다는 점이다.

 

 글라라씨  배추밭(주인 얘긴즉 자기네는 속이 꽉 찬 것보다 덜찬 푸르댕이가 더 좋단다)

DSC08196.jpg   DSC08199.jpg   

 

길을 내려오는데 김교수네 모과나무 밑에, 도랑에 모과가 엄청나게 떨어져 딩굴고 있었다. 봉지에 여나믄개씩 주워담으니 댓 봉지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체릴리아씨네 한 봉지, 글라라씨네 한 봉지(수세미와 함께 효소를 담겠단다), 뒷집 한 봉지 나눠주었다. 다만 뭘 담그든 모과 주인에게 한병씩 돌려드리라는 부탁과 함께....

 

나도 생전 처음 심어본 배춘데 제법 속이 들고 있다

DSC08149.jpg    DSC08152.jpg

 

저녁에 빵기네랑 스카이프 통화를 했다. 선물 잘 받았노라고 하던 참인데 어제 염려한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와 사부인의 전화내용을 보스코가  몽땅 아들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누가 남자의 입이 무겁다는 망언을 했을까?)  빵기가 듣고서 방방 뜬다. 보스코는 불난데 부채질까지 해 댄다. 내가 아들을 굿네이버스 제네바 총책이라고 소개했다나.... (내가 보스코의 잔등을 꼬집고 다리를 꼬집어도 입에 자크를 채우지 못하는 이상, 얘기를 다하고 말았다. 부자간에 이 엄마의 흉을 보는게 그렇게도 재미있나 보다. "좋은 이웃"의 "제네바 사무소(대표 성하은)"은 그 단체 기관지 이번달치에 사진과 함께 나온 기사인데도 말이다. )


졸업할 때 총장상을 타고서도 엄마가 자랑하고 다닐까 봐 친구 것 대신 받아왔노라고 꾸며댔고, 부상으로 받은 쟁반을 3년간이나 내 눈에 안 띠게 숨겨 놓은 아들이라서...."앞으로 내가 이런 굴욕을 당하고서도 네 자랑을 하나 봐라."라고 다짐해 보지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