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맑으나 여러날 황사로 인해서 삼각산이 뿌옇게 보임

 

구청에 낼 진정서를 마무리하고 아침상을 보았는데 동네 보일러 아저씨가 다시 보일러 봐주러 오고, 통장이 진정서 원문 받을 겸, 건물신축주가 길거리에 정화조를 파고 있다고 신고할 겸 찾아왔다. 현장에 가 보고서 해결하려고 나가는 참에(보스코는 나더러  "쌍문동 15통 만년반장"이라고 부른다. 하기사 이 동네에 30년 넘게 사는 사람은 40년 가까이 산 정민네 빼놓고는 없다.) 빵고까지 도착했다.

 

동네 일은 내 일이 급하여 말남씨를 현장에 불러내어 해결하게 부탁하고서 방학동으로 갔다. 보스코와 나, 그리고 빵고가 보스코의 동창인  박노헌 신부를 만나러 간 것이다. 9월에 방학동 성당에 부임했다고 한다. 나는 식당 "대문"에서 게장 백반이나 한정식을 먹고 싶었으나 박신부는 신학생에게 고기를 먹여야 한다면서 한우고기집엘 갔다. 식탁에서 여자들이 나물과 푸성귀를 즐겨 먹고 남자들은 술에 고기를 즐기는 것을 보면 먼 옛날 사내들은 들에서 짐승을 사냥하여 뜯어먹고 여자들은 주변에서 식물을 채집하던 원시시대의 유전인자가 양편에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름이 지글지글하고 피가 뚝뚝지는 고기를 돌판 위에 구워먹었다. "음식은 이렇게 먹어야 먹는 것 같지 커다란 접시에 한 젓가락씩 나오는 코스요리는 내 취향이 아냐." 박신부의 말이다. 나란히 앉은 보스코와 박신부 둘 다 카라는 뒤집어지고, 바지허리의 호크는 안 잠그고, 허리띠를 헐렁하게 맨채로여서, 모든 남자가 나이들수록 여자의 잔소리를 필요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이야 잔소리해 줄 사람도 없고 흉만 뒤에서 보겠지?

 

그러면서도 꿋꿋이 사제로 살아왔고 본당교우들을 보살피며 이렇게 친구를 불러 식사도 대접하는 그의 모습은 따뜻한 아버지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지난 번 박신부가 동찬씨와 현미씨의 혼배성사를 집전해 준 후 두 사람의 삶이 새롭게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사제는 꼭 필요한데 정작 사제 본인은 다독여줄 사람 없이 홀로 그 길을 가고 있다.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삶이니 보스코의 기도대로 "이 밤을 도와 성모님이 그의 머리맡에서 그의 헤진 옷을 깁고 그의 상처를 싸매주고 그의 마음을 쓰다듬이 주시리라."

(돌아오는 길에 사제도 65세가 넘으면 마음착하고 따뜻한 여인들을 선물해 준다거나 아예 독신제를 폐지하면 어떨까 하는 군더더기 생각이 떠올랐는데 "무식한 프로테스탄트"[우리 결혼 주례 사제 김성용 신부님이 농담으로 하시던 말씀이다.]의 상상일까? 3, 40년 후 우리 아들의 모습 같아서 하는 말이다.)

 

빵고는 점심후 오후 수업이 바쁘다며 즉시 돌아가고 집에 와 보니 상수 엄마(보스코는 10여년전 동네 총각 상수의 결혼식도 주례해 주었다.)가 김장을 한 통 담아다 주시면서 먹으라고 한다. 참 고마운 이웃들이다. 배추국도 주신다고 해서 집에 들어간 보스코에게 냄비 하나 담밖으로 달라고 했더니 20인분은 들어감직한, 제일 큰 남비를 꺼내다 주어서 김장을 하고 있던 동네 여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책상 앞 외에는 그는 가히 무능과 무분별의 지존이다.  그래도 그게 밉지 않으니 나 원참....

 

오후 2시에는 15통 주민들의 서명을 들고 통장과 함께 도봉구청 민원실에 가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장암동에 가서 국화와 시클라멘 화분들을 샀다. 꽃시장도 가을과 겨울 사이면 계절만큼 썰렁함 그대로다. 다른 "지리산 멧돼지들"도 그렇겠지만, 서울에만 오면 하루 이틀에 할 일을 다 처리해야 하니까 항상 방방 뜬다. 보스코가 도착하는 날부터 내려갈 생각만 하는 탓이다.

 

저녁 5시에 영원무역이 강북웨딩홀을 불하받아 매장을 열었다고 해서 장경애 이사를 만나볼 겸 찾아갔다. 1,2층은 (노스 훼이스 매장)손님들이 가득한데, 영원무역의 매장인 지하 매장은 아직 한산했다. 장이사는 보스코에게는 티셔츠와 바지를, 나에게는 잠바와 양말, 모자와 가방 등을 선물했다. 한 보따리다. 미안하기도 해서 모처럼 내 몫으로 거금을 들여 등산화를 한 컬레 샀다. 장이사에게 저녁을 대접할 생각으로 갔는데 굳이 칼국수를 먹겠다고 해서 그것으로 저녁을 떼웠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 그대로다.

 

장경애 이사는 90년대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하면서(내가 소비자측 공동대표였다.) 함께 일했는데 지금도 모든 일을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서, 오너의 마인드로 극히 유능하게 처리하는 사업가고 수완가다. 어떻게 저렇게 활기차게 거침없이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을까 오로지 감탄 그 자체다. 일을 즐기는 여장부다.

 

                  빵고가 우리에게 선물한  <유령 신부> 캐릭터. 서울집 창가에 놓여 있다.    DSC08019.jpg 

 

집에 와서 내일 아침 지리산으로 떠날 채비를 하려니 할 일이 많다. 아래층 총각이 돌아와 머뭇거리더니 내일부터 새벽기도를 간다고 한다. 내일부터 3개월간 둘이는  새벽기도를 하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보기로 작정했단다.  보스코가 늘 인용하는 El corazon si manda! (마음이 이리 명령하도다!). 엊그제 보스코가 주례사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눈에 콩꺼풀이 씌워진 그 순간만 사람은 상대방을 똑바로 보는 것이라고, 그게 하느님의 시선이라고 하였고 그 말이 하객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던 분위기였다.

 

가난한 인생들의 가난한 사랑 노래 속에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함께 하시면서 마음과 마음을 맺어주시나보다. 총각은 새벽기도차 내일은 일찍 나가니까 지금 도와 드리겠다면서 내일 실을 짐을 들어다 우리 차에 실어주었다. 저렇게 마음 착한 젊은이다 보니까 연상의 여인이 좀처럼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겠지 싶었다. 두 사람을 위해서 자꾸 기도손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