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맑음
아침 9시 우이성당 학생미사에 가니까 마리아 수녀님(원장)은 안 계시고 마리로사 작은 수녀님만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저녁에 기다리겠다고 하니 원장수녀님께 의논드리겠다고 하였다. 손님 신부님의 학생미사 강론은 참 특이하고 재미 있었다.
1시에 보스코의 동창 홍석정씨 작은아들 주형이의 결혼식을 주례하러 세종회관 세종홀로 갔다. 전철을 타고 갔다. 보스코 고교동창들의 반가운 얼굴들이 꽤 많이 보였다. 7년간 옥고를 치른 이용하 씨도 가발을 쓴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었다. 보스코가 어제 저녁에 그를 위로할 겸 저녁을 내면서 얘기를 나눈 터라서 소식은 듣고 있었다. 고대 국문과 서종택 교수(소설가인데 자기가 문학에 소질이 없음을 등단 40년만에 깨달았노라는 농담을 하였다.), 탈렌트 임현식씨(행사후 우리에게 커피 대접을 했는데 인기 연예인이어서 지나가는 모든 행인들이 그에게 눈인사를 보내면서 지나갔다.) 등 여럿을 만났다.
보스코는 간결하지만 좋은 주례사를 해 주었고(혹시나 관심 가질 분들을 생각해서 그의 주례사를 이 일기의 댓글로 달아달라고 보스코에게 부탁했다.) 결혼식과 점심이 끝난 다음 경세원 김영준 사장(근년에 보스코의 책, 퇴임기념논문집, 라틴어첫걸음, 단테의 제정론, 피코델라미란돌라 등을 그가 출판해 주고 있다. 모조리 돈 안 될 책들이어서 참 미안하다.) 이 우리를 자기 차로 데려다 주어 집에서 차를 들고 환담하다 돌아갔다. 찻잔을 놓고 젊은 시절의 야망과 고생을 들려주는 그의 얘기에서는 끈기있는 열정과 진솔한 정직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삶과 출판사 운영을 보면 교과서가 따로 없다. 그가 돌아간 다음, 그의 가족이 그의 교과서적 인생관을 따르느라 힘도 들었을 것이라는 촌평을 하니까 보스코가 나더러 "그럼 나는?" 하고 묻는다. 듣기 좋아라고 "당신은 교과서 + 알파다. 사실 그 알파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최고 아빠고 내게는 최고 남편이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 인생의 선택을 한다 해도 그 이상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최고의 무엇이다." 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까... 그러나 대부분 사실이다.
저녁 6시 반에 외사촌 김두상 의사가 찾아왔다. 환자에게서 선물받은 멸치 젓갈을 한 통 싣고 왔다. "형수에게 손님이 많고 김치를 잘 담그니 형수에게 더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가져 왔다."고 하였다. 스파게티를 차려 먹이고 그를 보내고 나니까 9시에 두 분 수녀님이 왔다.
저녁을 안 들었을 것 같아서 아까 좀 넉넉히 마련한 스파게티와 마카로니를 내어놓자 맛있게 들었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아랫층 송총각까지 합석하여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거의 자정까지 행복한 대화를 나누었다. 타종교간의 이야기("구원은 하느님 사정이지 우리가 쥐락펴락할 것이 아니다. 남이 예수님 모르고서도 구원받는다고 배 아파할 일이 아니다."), 성모님 이야기("아니, 아들을 잃어버리고서도 모르고 있다가 사흘만에야 알아챈 칠칠맞은 엄마가 어디 있담? 사형수의 엄마면서도 십자가에 버티고 서신 그 강단!")로 한없이 풀리다가 오늘 주보 "오늘을 사는 성모님"(평화방송 김은순 PD의 글) 얘기로 끝이 났다. 혹시 해서 거기 실린 우화를 옮겨 본다. 보스코가 서강대 철학적 인간학 시간에 영화로 보여주던 작품(위트)에 나오는 얘기(암으로 죽어가는 어느 여교수의 초등학교 은사가 병실로 찾아와 침대에 함께 누워 읽어주는 동화)여서 나도 기억하고 있던 얘기였다.
"엄마토끼와 아기토끼가 있었습니다.
아기토끼는 집을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토끼에게 말했습니다.
"난 집을 나갈 거예요."
엄마토끼가 말했습니다.
"나도 너를 따라갈 거야."
그러자 아기토끼가 말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못 잡게 물고기가 되서 물속으로 헤엄쳐 달아날 거에요."
엄마토끼가 말했습니다.
"그럼 나는 낚시꾼이 되어서 널 낚을 거야."
아기토끼가 말했습니다.
"그럼 난 새가 되어서 날아갈 거에요."
엄마토끼가 다시 말했습니다.
"난 네가 날아와서 앉아 쉴 수 있는 나무가 될 거야."
그러자 아기토끼가 "히잉. 그럼 그냥 집에서 아기토끼로 살래요." 했더니
엄마토끼는 말했습니다.
"자, 아가 당근 먹어라!"
결 혼 주 례 사
홍 주 형 군 의 혼 인 에 부 쳐
때 : 2009년 10월 25일(일)
곳 : 세종문화회관
신랑 : 홍주형(가브리엘)
신부 : 박지희(안나)
여기 단상에 올라온 신랑신부와 자리에 계신 하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가 이 혼사에 주례를 선 것은 50년 넘게 신랑의 부친 홍석정 법무사와 살레시오 학교 동창으로 함께 살아온 인연 덕분입니다. 신랑이 갓 태어났을 적부터 그 가정과 맺어온 우의로 오늘 신랑 홍주형군과 신부 박지희양의 혼례를 주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신랑은 가브리엘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신자로서 저의 대자이기도 합니다. 신부 역시 안나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신자여서 주례자는 이 혼인에 두 분이 믿는 하느님의 축복도 아울러 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십여 년 세월에 작은 아들을 이렇게 어엿한 젊은이로 키워 이제는 그에게 아내요 누이요 어머니 역할을 할 며느리에게 장가보내는 신랑의 부친에게 벗으로서 한 마디, “수고하셨네.”라는 각별한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어여쁜 따님을 시집보내어 또 다른 아들을 하나 맞으시는 신부 박지희양의 부친 박종대님과 모친 이수월님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각별한 인사를 드립니다.
자식은 품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발치로, 그 다음에는 짝을 지어 부모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거리로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 나가지만 부모의 정은 끊어지지 않는 탯줄처럼 마냥 자식을 따라갈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따라 부모를 떠난 그 법칙을 사람들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두 젊은이의 결혼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축하해주며 지난 날 두 사람의 정신적 사회적 성장을 함께 한 그 많은 벗들, 그러니까 초등학교부터 시작하여 중학교, 그리고 신랑 홍주형군이 포부를 키우던 서울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동창들, 신부 박지희양이 꿈많은 여고시절을 보낸 휘경여자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창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함께 하는 경향신문의 동료들과 언론인들, 그 모두가 고맙고도 은혜로운 만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결혼식장의 주인공은 단연 신부인 박지희양입니다. 모든 이의 시선을 받느라 너무 긴장하여 주례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둘이서 늙어죽을 때까지 함께 걸어야 할 인생에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한 마디가 신랑신부에게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일하던 젊은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흠뻑 빠지면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고 합니다. 시인 김소월은 “두 눈에 비단 안개가 둘리었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여기 오신 모든 하객들, 특히 부부로 함께 오신 하객들은 곁에 계신 배우자를 한번 바라보십시오. 지난 날 연애시절과 신혼시절 콩깍지 씌워진 눈으로 바라보시던 그 눈길로 바라보십시오. 아직도 그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은 부부는 행복합니다. 저는 결혼한 연수가 짧아선지 몰라도, 혼인한지 아직 40년이 채 못 돼서 그런지 몰라도, 아내를 바라보는 눈에 아직도 비단안개가 둘리었고 콩깍지가 씌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단안개가 둘리고 콩깍지가 씌워진 눈으로 애인과 배우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철부지의 짓이라고들 여깁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져 바라보는 그 시선은 두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시선입니다. 두 사람을 낳으신 부모님들이 두 사람을 키워 오신 시선입니다. 그리고 그 시선만 상대방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신랑신부는 “비단안개가 둘리어진” 사랑의 시선을 한 평생 보전하기 바랍니다. 콩깍지가 떨어졌다는 말은 제 정신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고 추루한 이기심이 돌아오고 세속적 계산이 부부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불길한 조짐일 뿐입니다.
이기심이 돌아오면 둘 사이에 찬바람도 불고 부부싸움도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을 주례할 때마다 신랑신부와 하객들에게 한 가지 비결을 알려드립니다. 부부싸움에 필승하는 비결 말입니다.
오늘 이 주례자 앞에서 신랑신부는 한평생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고 서로 존경하기로 서약했습니다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당장 두 사람에게는 고된 직장생활, 새로 맺어진 인척관계, 기혼자로서의 사회적 책무가 기다립니다. 신부가 지금 입고 있는 새하얗고 아리따운 웨딩드레스가 평생 입을 옷이 아니고 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자마자 일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옷, 일상의 삶은 올이 굵고 투박합니다.
출근 첫날부터 누가 침대를 정리하고 누가 아침을 마련하고 누가 설거지를 하고 누가 먼저 귀가하여 저녁을 준비할 것인지 의논하게 됩니다. 곧 누가 주고 누가 받는지 헤아리게 됩니다. 더구나 부부생활과 자녀양육에 대해서 신랑신부는 무면허운전사와 마찬가지여서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말다툼까지 가게 되거든 이 주례자의 한 마디를 기억하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을 가름한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비에는 “적게 사랑하는 자가 더 용감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부싸움에서는 사랑이 작은 편이 이깁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이 큰 편이 집니다.
그런데 부부싸움에서 꼭 이기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분이 이 식장에 있다면, 그분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인생에서는 여전히 철부지입니다. 신랑이 내 몸이고 신부가 내 몸인데 누가 누구를 이긴다는 말입니까? 사랑이 큰 사람이 늘 약한 법이어서 겉으로 보기에 지는 사람이 실제로는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부부싸움에 이기려고 하지 말고, 누가 더 사랑하느냐 내기하는 사랑싸움에 이기십시오. 옛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omnia vincit amor)"고 노래하였습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하는 말이니 신랑신부는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사랑만 사랑만 하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항상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부디 ‘주는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장차 두 사람에게 점지되어 인생의 길을 두 분에게 물으러 올 자녀들에게도 ‘주는 마음’을 가르치십시오. 자식이 달라는데 부모가 뭘 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자식에게 주지 않았기에 먼 훗날 자식들에게서 엄청난 불효와 형제불화와 부부싸움과 사회부적응을 목격하는 수가 있습니다.
다만“받기보다 주는 사랑”과 “팔을 안으로만 굽히지 않고 밖으로도 뻗는 마음”은 인간적으로 잘 안 되고 하느님이 함께 하셔야 가능하기 때문에, 두 분은 가톨릭교회의 신앙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랑의 대부로서 하는 말입니다. 두 분이 오늘 우리 앞에서 내린 이 사랑의 선택을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선택을 후회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삶이 없습니다.
2009년 10월 25일
주례 성 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