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맑음

 

진이네 곶감 깎을 감이 27일에 들어온다고 해서 감동의 저온창고를 정리하였다. 그곳의 식품도 허룩해져서 우리가 귀국하여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창고 속의  과일이나 감자와 양파도 정리하였다. 대부분 이웃 아주머니들이 선물한 것이다. 요즘은 고구마를 캐는 계절인지라, "우리 고구마 캤소. 좀 잡수이소." 하며 가져다 준 고구마들이 자그만치 다섯 바구니나 냉장고 앞에 있다. 얼마나 다정하고도 푸짐한 이웃들인가? 그이들을 보면 내가 홉으르 주고 되로 받고, 되로 주면 말로 받는 고마움을 늘 느낀다.

 

오후에는 내일 오시는 손님들을 맞느라 침대 시트를 갈고 이불을 손질하고 여름의 차렴이불을 겨울 이불로 갈았다. 조금 있으면 오리털 이불을 덮어야 할 게다. 하느님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을 갈아가시면서 산천과 온갖 생명들을 보살피시는 품도 조용하고 소란스럽지 않고 느긋하시면서도 실은 분주하시다. 어느 새 앞산의 골골에는 단풍이 물들어 가고 뱀사골의 단풍은 벌써 절정인 것을 보면 산에서 사는 세월도 어쩌면 이리 빠른지... 

 

내일 저녁 먹을 나물을 불리고 삶고 반찬으로 준비하고, 시든 꽃은 정리하고서 새로 따온 꽃을 꽂아 방마다 장식하였다. 가을 산국은 향기가 그윽하고  꽃송이는 잘디잘아서 겸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여자들 하는 일도 자리도 안 나고 표도 안 나지만 덕분에 가정이 꾸려지고 남정네들이 행복해하고 마을이 평화로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일,이층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면서 쏘다니는 거리는 허리춤에 찬 만보기로 하루 대략 10000보 가량 나온다. 보스코가 나에게 돈주면서 이런 근무를 시킨다면 파업에 파업을 거듭할 게다. 사랑이 뭔지 몰라도 아내의 도리로, 어미의 도리로, 자발적으로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해내는 양을 보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임에 틀림 없다.

 

아래층에는 꿀벌부부가 사는데(이 부부의 하루는 틀림없는 꿀벌들의 붕붕소리 그대로다)  위층에는 다람쥐 부인이 사는 셈일까?  보스코는 하루 1000보쯤 움직이고 약간 거닐면 3000보쯤 움직일 게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보기를 보일라치면 그때마다 보스코는 나에게 노벨평화상을 주겠노라고 나선다. 상금도 없이 종이 한 장만 달랑 주는 여지없는 "립-서비스"일 텐데... (보스코의 노벨상 운운은 사실 내가 내 가사노동을 두고 스스로 공치사하거나 푸념할 적마다 보스코가 나의 그 발언을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이라고 놀리는 데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