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7일 목요일 날씨 종일 맑음

 

산청에서 거창 가는 길에 오빠가 휴천재에 들렸다. 올 봄에 시집간 딸 미선이가 근무태도가 게을러져서(사실은 임신해서 입덧이 심하여)  오빠 회사에서 자르겠다고 하더니 (본래 좀 게으른 데다가 임신까지 했으니 사장님인 오빠의 마음에 들리가 없겠지) 년말까지는 봐주겠다고 하였다.

 

오빠 왈 "나도 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야"라고 말할라치면 옆에서 올케가 "지금 누구 얘기 하는 거에요?"라고 묻는다나. "바로 내 얘기야."라고 하면 "아니, 정말로 누구 얘기냐고요?"라면서 따진다나. 이처럼 올케와 농담도 주고받는 처지가 된 것 같아서 참 안심이 된다. 미선이 결혼식 때에 올케의 친구들이 자기를 보고서 올케한테 "얘, 얘, 너 아직 십년은 더 고생해야겠다. 너네 남편 아직 펄펄 살아서..."라던 말도 나에게 전해주는 것을 보면 둘 사이가 어지간히 풀리고 녹은 것 같다. 오빠는 진이엄마가 준 칡차 두 봉지와 내가 따온 애호박을 들고서 거창으로 떠났다.

 

보스코가 양수리에서 모임이 있어서 대전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대전에서 양신부의 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함양에 도착한 우리는 표를  끊고(13시 직행) 터미널의 충무식당에서 백반을 먹었다. 값이 5천원인데 여러가지 반찬이 정갈하고 맛갈지다. 장소만 좀 깔금했으면 손님도 데려갈 텐데.  

 

오후에는 김밥을 마련하고 순대를 쪄서 산보 삼아 용식씨 감동짓는 현장에 위문하러 갔다. 공사를 책임진 석형씨가 이레만에 서울에서 내려왔고 내일은 상을 당해서 다시 서울로 가야 하고, 조수를 하는 효익씨는 손을 다쳐 깁스 상태니 언제 집이 끝날지 걱정이다. 감깎을 때까지는 끝나야 할 텐데.... 눈내리기 전에는 사방벽을 막고 들어서야 겨울을 나겠지.

 

나여사가 문상 집터에 심은 배추에 물을 준다기에 터닦은 것도 볼겸 따라서 도정에 올라가 보았다. 지리산이 밥상머리로 다가오는 기막힌 자리였다. 내려오는 길에 이기자네 들렸더니 이기자도 서울 가고 없고 글라라씨 혼자 있었다.

 

그 집에서 저녁을 겸해 효소 한 잔과 새우깡을 먹고서 반딧불이가 가득한 깜깜한 길을 걸어 내려왔다. 보스코가 없으면 못 살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나절은 잘 살아진다. 그것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