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맑음

 

 오늘 오후에는 김용애(체칠리아) 수녀님이 보스코에게 포토샵을 개인교수해 주려고 우리집에 오는 날이다. 점심을 차려드리고 싶었지만 수녀님이 쑥스러워할까 봐 오후에 오시라고 하고 간식만 차려놓고 갔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까 보스코는 북한산 설경을 배경으로 손자와 자기 사진을 턱 포토샵해 놓고서 나한테 자랑이다. 며칠 전에 올린 사진들을 다시 손질하였으니 손자가 어지간히 이쁘긴 이쁜가 보다.

 

결혼 초에 찍은 빛바랜 사진들도 몇 장 포토샵 해 놓고서 보여준다. 그의 첫 작품은 "전순란"이었는데 (내 블록 “전순란 글방” 첫 페이지 하단에 올려 있다.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여인에게”라는 제목까지 붙여서 말이다.) 이번에는 손자 성시아에게로 사랑이 옮겨가고 말았나보다. 요녀석이 감히 할머니와 사랑의 라이벌이 되려고 해?

 

                보스코의 두번째 포토샵

          시아와-02.jpg    

 

요양원에서 오늘 오후 저녁을 들도록 손을 닦아 드리고 발을 닦아 드리고 나니 그 깡패할머니가 웬일인지 보드라운 음성으로 “고마워.”라고 한다. 나는 감격해서 한 순간 방심하였는데 사정없이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확 당겼다. 순간 “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담당요양보호사와 남녀 사회복지가사 달려왔다. 그들이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남 안 보게 손 좀 봐 드렸을 텐데... 속으로 “망구!”하면서 노려보았고 사람들이 자기를 빙 둘러싸자 상황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해.”라고 한다.

 

그 할머니는 하루 종일 휠체어에 감금되어 있다시피 한다. “그니의 팔이 미치는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특히 여자들은 꼬집히고 뜯기고 얻어맞기로 각오할진저!“ 침대에 눕히면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찢고 던지고 기저귀도 발기발기 날려버린다. 그래서 인사불성에 가까울 정도로 졸려야만 데려다 눕힌다.

 

보통 남자들은 남자끼리 식탁을 보아주는데 그 할머니만 남자와 함께, 그것도 소리소리 지르는 아주 무서운 남자와 함께 앉힌다. 이유인 즉, 다른 할머니와 함께 앉히면 소란을 피우고 남의 음식그릇을 빼앗아 던지고 사람을 패고 한단다. 그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다 왔을까? 아마 항상 교전상태에 있던 전쟁터나 난민촌을 방불케 하는 가정에서 왔을까? 노인들의 지금 모습에서, 그들의 언행에서는 그들이 살아온 인생역정이 대강 짐작된다.

 

첫날 커피 타오라고 소리 지르다가 나한테 제압당한 예의 그 고약한 할아버지는 나에게 “선생님!”이라면서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저 할머니도 며칠만 더 나랑 같이 있으면 화장실로 데려가 좀 길들여 볼 텐데.... 나도 이제는 지리산에 가서 밭도 갈고 채소도 심으면서 올 여름을 보내야 할 테니까 아깝다 아까워....

 

오늘 아침 실버타운에 도착해 보니 매일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있고 밥때에도 눈을 꼭 감은 채 입만 살짝살짝 벌려 밥 숫가락을 받던 내 담당 할머니가 안 보인다. 찾아보니 아침을 많이 들고 거실에 나와 있다. 그것도 눈을 뜨고서 말이다. 그래서 거기다 식탁을 차려드리니 이번엔 맞은편에 학처럼 고고한 그 할머니가 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공익총각이 하는 말로는, 밥 먹는 방법을 잊어버려 숟갈과 포크 사용을 식사시간마다 새로 가르쳐야 한단다. 한번 틀리면 몇 끼니는 식탁에 나오지도 않아서 “회장님, 구청장님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십니다.”라고 해야지 겨우 방에서 끌어낼 수 있단다. 밥 먹을 줄도 배고픈 줄도 모른단다. 아마 이슬만 먹고 사는 세상에서 살다 온 분 같다.

 

저녁에는 복도에 있는 내 담당 할머니(한번도 음성을 못 들어서 나는 그분이 벙어린 줄 알았다.) 가 식사를 하는데 건너편 식탁에 앉은 두 분 중 하나가 하루 종일 투정을 하더니 집에 간다고 보따리를 챙긴다. 그 보따리에 고무장갑, 밥 먹는 턱받이수건, 화장지에다 벗은 양말짝까지 챙기더니 물컵도 넣어간다면서 그만 물을 복도에 다 엎질러버렸다. 그러고는 앞에 계신, 생전 말이 없이 해맑은 눈을 한 할머니의 컵을 빼앗아 간다.

 

그러자 그 순간 여러 기적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소리없는 그 할머니가 “내, 내, 내꺼야 내놔!”라고 목소리를 낸 것이다! 내가 처음 들은 목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화난 표정으로! 그 순하디 순한 얼굴이 갓난아이 같다고 우리는 말해 왔었다. 그래서 내가 물컵을 빼앗아 주인에게 도로 돌려주었다. 심술할머니에게는 “할머니는 물을 엎었으니 오늘 저녁엔 물이 없네요.”라고 하면서.

 

그러자 내가 돌보던 할머니가 “잘했어! 주지 마!”라고 두번째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기적이다. 그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런데 할머니는 물컵이 두 개니 하나 저 할머니한테 줘도 돼요?” 라고 물으니 “그래, 줘!”라고 대답도 한다. 이렇게 사리를 분별하는 분들이라면 “내 머리를 끄든 저 사납쟁이 할머니에게도 한번 노력을 해 봐?” 하는 유혹도 느낄만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