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9일, 금요일 날씨 맑음

 

무제-1.jpg  새벽 4시에 시아가 큰소리로 울어서 잠이 깼다. 안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침대에 앉아서 “여기는 한국이 아니에요. 한국은 저기에요. 밖에 나가자요.”라는 말을 거듭하는데 그 말이 얼마나 애절한지 “그래, 그래 밖에 나가자."하고 안고서 마루에 나와 얼러주니 울음이 차츰 잦아든다. 지선이는 시아가 종종 꿈을 꾸고서 잠뜻을 해서인지 그러려니 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저 작은 생명이 먼 이국에서 여기는 한국, 내 할아버지의 땅, 우리 아빠가 태어난 곳이려니 하고 찾아왔다면 왜 저리 슬픈 꿈을 꾸는 걸까?

 

며칠 전 엄마랑 할머니랑 외출했을 적이었다. 난데없이 “알리싸는 까매서 싫어.”라는 말을 내뱉었다. 유치원에 알리싸라는 애가 있는데 거무잡잡한 얼굴에 곱슬머리로 사진에 나와 있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었다면서 엄마가 너무 놀라워하자 아이는 곧 “엄마, 이런 말 하면 선생님한테 혼나지?”하고 둘러댄다. 유아원에서도 인종차별의 언사는 금기인가 보다. 하지만 가끔은 자기 눈을 두 손으로 가늘게 늘이면서 “쪽 째진 눈”이라고 하거나 자기 코를 검지로 누르면서 “납작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걔도 유아원에서 그런 놀림을 받는 게 분명했다.

 

내 땅에 살아도 삶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지만 십년 넘게 외국생활을 해본 나로서도 그곳 생활이 환상만은 아님을 절감하고 그곳에 있을 때는 늘 고국이 그리웠다. 자다가 일어나서 잠을 덜 깬 상태에서도 술술 나오는 우리나라 말을 쓰는 땅이 그리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와서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에 웬 한국 사람이 이렇게 많지?”라는 이상한 생각이 문득 드는가 하면 어디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면서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곳도 그곳도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인이 되어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은 집시”라는 이탈리아 칸조네가 있다. “가장 아름다운 풀밭, 별이 내리 쏟아지는 풀밭을 찾기까지”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방랑하는 얘기를 보스코에게 했더니, 우리에게는 이곳이 영원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본향(本鄕)에 안착하기까지 우리 마음이 들떠 있는 게 당연하다는 답을 하였다. 가브리엘 마르셀이라는 철학자가 인간을 가리켜 “길가는 나그네"(homo viator)이라고 정의했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오후에는 시아를 데리고 솔밭공원엘 갔다. 애들이 많이 있는데, 모두가 눈이 쪽 째지고 코가 납작한 아이들인데도 시아는 딴 애들에게 덥석 다가가지 못했다. 선글라스를 끼고서 엄마 손을 잡고 점잖게 솔밭 공원을 거니는 것이었다(제 할아버지 취향과 동작 그대로였다!). 아마 매일 유아원에서 눈에 익은 애들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세 살 반짜리 꼬마가 그 작은 마음에 어디다 고향을 내릴지, 내가 늘 아릿하게 허전하던 그 마음을 갖고 평생을 살아갈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안쓰러웠다.

 

 덕성여대 마당에서 며느리와 시아와                북한산 순례길을 엄마와 함께 걷는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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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도 가자고 조르기에 보광사까지 할아버지가 유모차를 몰고서 올라갔다. 우리집 삼층 다락방에서 삼각산을 바라보면서 몇 번이나 "할머니, 산에 가요!"라고 하던 참이었다. 홀몸이 아닌 지선이가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임신 중에도 몸을 좀 움직여 주는 게 좋을듯하여 함께 갔다. 오르는 길에 시아는 유모차에서 한 시간 족히 잠을 잤는데 대웅전 처마 밑의 용을 보여주니 벌떡 일어났다. 더구나 걔의 얘기 속에 등장해서 걔를 구해준다는 “보라색 용”이었다. 아이는 용의 집에도 들어가 보자고 하였다. 나와 함께 대웅전에 들어간 시아는 그곳에 가득 찬 크고 작은 금색 불상들을 보면서 생전 처음 대하는 화상들이어선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 놀란 얼굴로 빨리 나가자고 했다.

 

                    시아의 얘기 속에서는 보라색 드래곤이 등장하여 시아를 구해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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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나는 지선이와 시아를 데리고 등산로로 내려오고 보스코는 유모차를 몰고 한길로 내려왔다. 시아 말이 “할아버지가 안 보여요. 할아버지가 불쌍해요. 혼자만 가고." 마음이 여리고 섬세한 게 꼭 할아버지를 닮았고 낯가리면서 처음 보는 사람을 기피하는 것도 똑 같다. 빵기도 군대 가기 전에는 꼭 아빠를 닮아서 누구 집엘 가더라도 책 한 권 붙들고 구석에 박혀 읽다가 소리 없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다 군대엘 갔다 와서는 지금처럼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얼굴만 닮아가는 게 아니고 성격까지 같은 그게 참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들에게서는 좋든 싫든 언제나 나를 보게 된다. 한길에서 KFC에 들어가 새우 버거를 한 개씩 먹고 덕성여대 마당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산행길에는 4.19 국립묘지가 한 눈에 바라보인다.

저 묘지에 뭍힌 죽음들을 두고 접동새가 피를 토하는 4월이다.

DSC01589.jpg    시아는 오전에 미장원에 데려가 머리를 깎아 주었더니 머리카락이 목을 찌르는지 계속해서 긁어댄다. 목욕을 시키고 재우려는데 밤 11시가 훨씬 넘어 자정이 되어도 무엇이 그리 궁금하지 연달아 내게 달려와 물어보고 엄마 방으로 달려가고 하면서 잠을 못 이룬다.

   

   저렇게 호기심 많은 아이를 키우려면 애 엄마가 어지간히 힘들고 인내가 필요할 텐데 지선이가 딱 그런 엄마다. 아이가 아무리 떼를 써도 조용히 지켜보면서 조용조용 설득을 하지 큰소릴 치지 않는다. 그니의 입에서는 한번도 큰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와 너무도 대조적인 성격이어서 내가 내심 감탄에 감탄을 하곤 한다. 우리 아들도, 자기 아들도 닦달하지 않고 보슬비처럼 조용조용 달래주는 아내요 엄마다. 우리집에 며느리 하나 참 잘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