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8일, 목요일, 맑음

 

보스코는 아침 일찍부터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면서 경희의료원에 예약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다고 움직이더니 7시 반에 집을 나섰다.내가 아니면 병원에도 혼자 못 가는  그가 병원에 혼자 가다니 제법이다. 집에 남은 우리 세 사람은 각자 먹을 것을 챙겨먹고서 시아의 건강검진 길에 나섰다.

 

먼저 안과엘 가기로 했다. 강북구청 사거리에 있는 “하안과”를 찾아갔다. 의사선생은 우리의 설명과 우려를 듣더니 시아의 눈을 이리저리 검사하고서는 눈썹이 동공을 찌르는 것도 아니고 난시도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럼 왜 햇볕에만 나가면 눈을 못 뜨느냐고 지선이가 물었더니 아가들은 워낙 시력이 약해서 형광불빛 아래서도 눈이 부신 법이라면서 선글라스를 끼우는 것은 녹내장이나 약시를 보호하는데도 좋다고 설명했다. 성실하고 친절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시아의 병원나들이: 먼저 안과에 가고               그 다음 이비인후관에 가서 귀지를 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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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나온 길에 아예 수유전철역 주변에 병원이 많으니 이비인후과에도 들러보기로 하고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의 어느 병원 문을 들어섰다. 의사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아이의 오른쪽 귀는 귀지가 꽉 차 있어서 오늘 약을 넣은 후 2~3일에 걸쳐 파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니 왼쪽 귀에서는 새끼손톱보다 큰 귀지를 꺼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그 귀지를 잔뜩 겁 먹은 아이에게 내밀면서 “봐라, 봐. 먹어라, 먹어!”라는 농담이었다. 신사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못한 그의 태도는 여름밤에 가로등 밑에서 버티고 있다가 가로등에 부딪쳐 떨어지는 날파리를 날름날름 집어 삼키는 두꺼비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지선아, 우리 동네 큰길에 있는 이비인후과가 하나 있으니 아예 그 곳에도 가 볼까?” 했더니 그니도 나와 같은 느낌이었던지 얼른 그러자고 한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젊은 의시가 귀내시경으로 귓속을 꽉 채운 귀지의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기름을 넣어 녹인 뒤에 3분의 2 정도만 끄집어냈다. 귓벽에 붙은 것을 무리하게 꺼내면 피가 나오거나 중이염에 걸릴 수 있다면서 나머지는 그냥 두자고 하였다. 치료비도 먼저 병원의 절반정도만 받았다. 약까지 처방해 주었다. 이렇게 의사들은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감을 보여줘야 하는데...

 

작년엔가 오십견으로 고생하던 보스코와 팔이 아팠던 내가 찾아간 척추전문병원 의사는 지리산에서 왔다니까 “주사 한 방에 오십견을 깨끗이 날려주겠다.”고 큰소리치면서 뭔가 수상한 주사를 주었고 약도 한 달 치나 주기에 영 믿을 수 없어 한 봉지도 먹지 않고 만 일도 있었다. 환자가 많다보면 의사도 많아선지 별 이상한 사람도 참 많다.

                      "아멘!"

무제-1.jpg 12시 반에 돌아오니 빵고와 보스코 둘 다 집에 와 있었다. 조카를 본 빵고는 신이 나서 위아래로 던지고 어르고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린다. 부제인 삼촌의 식탁기도를 시아가 얼마나 귀엽게 손을 합장하고서 받는지 핏줄이란 이렇게 아름답게 이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사냐와 고기와 시금치 나물에 포도주를 곁들여 점심을 차렸다.

 

식사가 끝나고 과일을 먹는데 보스코의 그 안 좋은 버릇이 나왔다. 그는 채소든 김치든 과일이든 씹다가 섬유질이 나오면 즙액만 빨아먹고서 남는 것을 내뱉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내가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손주 시아의 눈에 딱 걸렸다. “아이, 챙피해. 그걸 뱉다니, 할아버지 주사 맞아야겠다.” 한 동안 할아버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저도 삼촌이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초코볼이 나오니까 엄마 접시에다 낼름 내뱉었다. 그러고서는 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즉시 “시아도 챙피해. 나도 주사 맞아야겠다.”고 자백하여 모두를 웃겼다. 네 살도 안 된 아이가 어디서 그런 지혜와 말이 나오는지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아무리 어려도 자기의 잘잘못, 남의 잘잘못을 저렇게 환하게 간파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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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빵고는 고단했는지 식곤증 때문인지 소파에 누워 늘어지게 한잠 자고서 자기가 있어야 할 곳 살레시오 수도원으로으로 떠났다. 형이 보내준 작은 선물과 송총각 엄마가 보내왔던 한번 먹고 남은 한 스무명은 먹을양의 새싹 비빔밥용 새싹 을 챙겨 갖고서... 작은 아들과는 아직도 "탯줄자르기"가 덜 되었는지 늘 마음 한편이 허전하고 안쓰러워 성당이든 성지든 기도할 곳을 가면 누구보다도 걔를 위한 기도가 먼저 나온다. 내가 이런다고 질투하실 하느님도 아니실 테고.... 수도자나 성직자를 둔 부모가 한결같이 느끼는 감정이라고는 하지만....

 

 삼촌과 조카의 다정한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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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지선이와 시아를 데리고 오빠네집에 가서 잠깐 인사를 드리고 왔다. 한 달 만에 깁스를 푼 올케는 지난 일요일에 딸 미선이가 아가를 잠시 맡기고 외출하는 바람에 아기를 보다가 다시 발이 퉁퉁 부어 잘 걷지도 못하겠다고 푸념하였다. 미선네 부부가 들어와서 할머니가 아기를 키우게 된다면 어찌 될지 궁금하다. 시아는 그 집에서 처음 5분간 내외를 하더니 곧 풀려서 온갖 재롱을 다 하고 삼촌할아버지가 내준 초콜릿까지 챙겨 갖고서 돌아왔다. 내가 일기를 쓰는 11시 반까지도 시아가 잠들지 못하는지 안방에서 엄마에게 투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 할아버지, 그걸 뱉다니. 챙피하게. 할아버지, 주사 맞아야겠네."

놀리면서도 할아버지 머리를 빗겨 드리는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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