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5일, 식목일 월요일 날씨 맑음

 

하루 종일 손주 시아와 씨름하며 놀았다. 업어주기도 하고 유모차를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얘가 빵기 아들이에요.” 자랑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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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고 삼촌이 포샵한 시아의 사진  

 

꼬마가 집을 나설 때에는 신났는데 중간에 갑자기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까 햇빛에 눈을 못 뜨는 것 같다. 빵기가 어렸을 적에 햇볕에만 나가면 눈을 못 떴는데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 대학 다닐 적에 인도여행을 하면서 그곳 태양이 너무 눈부셨는지 결막염에 걸렸고, 거기서 만난 영국인 의사가 한국에 가면 꼭 눈을 검사해 보라고 충고하더란다. 돌아와서 정밀검사를 해 보았더니 검은 동공이 많이 눈썹에 긁혔다고 하였다. 그래서 쌍꺼풀 수술을 했고 그의 눈이 가장 인공적인 부분인데, 사람들이 그를 처음 보면 아빠의 눈을 많이 닮아서 눈이 크다고 인사하는 바람에 우리가 속으로 웃는다.

 

그런데 바로 손주 시아가 눈을 못 뜨고 비비는 것을 보니 어찌 심상치 않다. 병원에 데려가려고 해도 이곳 의료보험이 안 되어 바로 데려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다음에 커서 시아도 눈에 쌍꺼풀 수술을 한다면, “아이고, 할아버지와 눈이 꼭 닮았네.”라는 인사말을 들을 게다.

 

빵기가 사 보낸 자동차 배터리를 보스코가 갈아 끼웠더니 드디어 자동차가 움직였다. 액셀을 밟으면 기어의 위치에 따라서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간다. 핸들을 돌리면 방향이 달라진다.  시아는 조금씩만 탄다.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지 한 2, 3분 타고 내려버린다. 그 차는 7~8시간 충전하면 1시간 반을 움직이는 BMW 자동차 Z4의 미니다. 이웃집 정민이네 아이가 타던 것인데 그집 아이들이 자란 다음 내가 얻어다 3층에 놓아둔 게 드디어 손자에게 장난감이 되었다!

 

시아에게 글자를 가르치려고 그 동안 우유팩을 많이 모아두었다. 일일이 가위질하여 잘라 놓은 것도 할아버지다. “엄마”, “아빠”, “성염”, “전순란”, “성시아” 다섯 단어를 써 두고 가르치는데 아주 쉽게 카드를 구별해낸다. 너무 다급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루에 다섯 단어만 가르치기로 했다.

 

먼 옛날, 아랫집 정진호가 이듬해에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도 도대체 글 배울 생각을 안 했다. 그는 이층의 큰아빠 같은 교수님은 절대 안 되겠다고 선언한 참이었다. 하루 종일 놀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의 직업은 지겹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두 가족이 제주도에 있는 내 친구 신동일 목사님 댁으로 놀러갔다. 그곳에서 신목사님 제수씨 댁에서 저녁을 먹는데 그 댁에 진호와 동갑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걔는 책을 곧잘 읽으면서 은근히 진호에게 유세를 하고 있었다. 문맹인 정진호가 곁에서 보면서 자존심이 상해 있던 터에 책에 산토끼 그림이 나왔다. 저 정도면 자기도 때려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지 진호가 용기를 냈다. “나도 읽을 수 있다.” “흥, 그럼 읽어 봐.” “토오끼.” 여자애는 눈을 착 내리깔면서 점잖게 한 마디 하였다. “아냐, 산토끼야.” "........."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진 정진호는 지리산으로 돌아오자마자 “큰엄마, 글 가르쳐 주셔요.”하고 나왔다. 자진해서 한글 학습에 나선 것이다. 역시 사람은 필요에 의해서, 자존심에 난 상처를 만회하기 위해서 용기를 낸다면 어려울 게 없다. 그 뒤 정진호는 일주일에 웬만한 글을 다 읽었고 한 달 뒤에는 나한테서 “너는 사모님의 모든 무술을 다 익혔노라. 그만 되었으니 하산(下山)하거라.”는 말을 듣기에 이르렀다.

 

시아는 스스로 종이와 펜을 들이밀고 공부를 놀이로 생각한다. 공부를 놀이로 생각하는 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최고경지 아니던가? 어렸을 적의 보스코도 고아의 처지가 되어 살레시오 학교 기숙사에서 공짜로 밥 먹여주고 옷 입혀 주고 공부를 시켜주는 일에 더 없이 감지덕지 하였고 달리 공부밖에 할 일이 없었다면서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언사인가? 우리 범인은 공부만 빼놓으면 다 좋은데 말이다. 어떻든 손주 성시아가 바로 할배를 닮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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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방학동 성당 박노헌 신부님이 전화를 해 와서 순대국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나갔다. 우리는 점심에 스파게티를 먹은 터여서 저녁에는 떡국을 끓였는데 시아가 맛있게 잘 먹는다.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게 참 신기하다.

 

저넉식사 후에는 손주와 숨바꼭질을 하느라 한 시간 내내 집안을 뱅뱅 돌았다. 내가 “시아, 어디 있지? 어디 갔을까?”라고 소리치면 컴퓨터 앞에 앉은 할아버지 책상 밑에 숨어 있다가 “여기!”하고 대답한다. 싱겁기 짝이 없는 술래놀인데 그게 더 없이 재미있고 둘이서 깔깔거리고 춤을 추고 하였으니 나도 나사가 빠진 게 틀림없다.

 

일기를 쓰려고 앉아 있는데도 색종이를 내밀며 “할머니, 아니 이모, 배 접어주셔요.” 하고 하나를 접으면 “앙까(하나 더)!” 한다. 나이든 여자를 보면 “이모”라고 부르던 제네바 교민사회에서의 말버릇 때문이란다. 나한테만 아니고 제 외할머니한테도 “할머니, 아니 이모”라고 불렀다니 내가 너무 좋아할 것도 아닌 성 싶다.

 

이렇게 일주일만 손자와 놀면 코피 터지겠다. 하기야 행복에 겨워 웃다가 죽는다면 죽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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