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일 토요일, 맑음

 

거의 한달 간 물건들을 현관 안에 쌓아두고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아침에 나가면 저녁이고 저녁 먹고 나서 내일 점심에 보스코가 먹을 반찬을하고 나면 밤 10시. 그때부터 이메일 살피랴, 기사 좀 훑어보랴, 일기 쓰랴 하고나면 밤 12시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기 올리고 나서(사진을 다듬고 서투르게나마 포샵 해서 올려주는 일은 보스코 몫이다. 제목도 보스코가 다듬어준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한다. 보스코가 맘 속으로는 아마도 “전순란이 언제까지 저 꼴을 놓고 볼 수 있을까?” 하고 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늘 토요일 아침 맨 처음 한 일은 현관 정리정돈! 청소하고 걸레를 빨아 서너 번 박박 딲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다. 이층 테라스는 그 동안 보스코가 손주 온다고 비온 후마다 청소하고 퐁퐁을 부어서 물청소하고 해서 걸레질만 댓 번 하니 깨끗해졌다. 손주가 무섭긴 무섭구나. 그렇게 해 놓구서도 걔가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놀 수 있도록 하라고 나한테 하명해서 우습기도 하다.

 

[시아의 추억] 시아가 태어난 2006.12.24        할머니와의 첫상봉 2007.1.2 (제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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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의 첫상봉 2007.4.2  (로마)                        할머니와의 한 때 2008.7.4 (지리산)

 

그리고 손주가 테라스를 맨발로 다니면 찰 것 같아서 애기 흰고무신을 한 켤레 샀다. 시아를 본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어서 걔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이 안 간다. 사부인의 전화로는 아주 점잖아지고 사춘기가 다 지난 것 같다고 하셨으니 총각 하나를 만날 것 같아서 기다려졌다. 혼자서 4살짜리 “성총각”과 할 일을 이것저것 생각해본다. 장암동에 가서 꽃을 사다가 마당에 함께 꽃이나 심을까? 삽으로 흙을 파는 일을 시켜볼까? 이 궁리 저 궁리 하면서 절로 신이 난다.

 

보스코가 내일 시제(時祭)에 내려간다고 4시에 막내 시동생 훈이네에 갔다. 송탄에 가서 저녁 먹고 훈이 서방님네와 함께 부활성야미사에 가고 내일 새벽에 장성으로 떠나겠단다. 내일은 장성군 삼서면 유평리에서 성씨 문중 지사공파(문효공파) 시제가 열린다. 해마다 4월 5일에 시제를 지냈었는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탈락된 후 4월 첫 주일에 열린다. 보스코가 10여 년 전부터 문중회장을 맡고 있어서 가능한대로 꼭 참석한다. 시제에도  언제나 함께 갔는데 작년과 올해 이태를 내가 빼 먹는 셈이니 조상님들이 기다리고 계시겠다.

 

4시에 보스코를 창동역에 실어다 주고 돌아왔다. 집에 와서 아몬드 케이크(바스크)와 애플 케이크를 구웠는데 애플 케이크  위에 젤을 덮어야 해서 한천(우뭇가사리)을 구해야 했는데 동네 건어물상에 나아가 물어보니 주인 아저씨가 한 시간을 찾는데도 안 나온다. 10시가 다 되어 송총각이 들어왔는데 E마트을 내 대신 가 주었다. 그러나 거기도 없었고 홈플러스와 창동 농협 하나로 마트에도 없단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한천으로 양갱이를 주로 만드는데 그것도 만드는 여자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빵을 만드느라 부엌 하나 가득 늘어놓았는데 다 치우고 나니 밤 12시가 되었다. 만드는 건 힘들지 않는데 치우는 게 그렇게 사람을 귀찮게 한다 그래서 옛날 내가 제빵사 제과사 공부와 한식조리사 양식조리사 공부할 때도 언제나 주변 정리하는 것을 성적에 꼭 포함시키고 그것을 중시하였던 기억이 났다.

 

나이 쉰이 넘으면서 많은 여자들이 커피도 일회용 믹서를 종이컵에다 타 먹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려 설거지를 피한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집을 세 준 사람들이 한국여자들이 가스레인지 쓰는 것을 보고 질겁하곤 했던 기억이 안다. 생선조림이나 김치찌개가 넘친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계속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질겁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레인지를 날마다 말끔하게 닦아 놓고 창문도 하루가 멀다 하고 닦고 방바닥 닦듯이 창을 닦는다. 여하튼 이탈리아 가정주부들의 하루 일 양은 엄청나다. 그런 맥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섞여 살다보니 처음엔 그 부인네들의 가사노동량이 이상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아낙들의 가사기피증이 이상해 보인다.  내가 이상한 아줌마가 되어버렸나보다.

 

그러나 뭐든지 익숙해지기가 힘들지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그것이 되레 편하다. 잠잘 때도 모든 게 정리정돈되어 있어야 편안해하는 나를 두고 내 주변사람들이 “당신은 절대 며느리와 함께 살지 말라. 며느리가 앉아 있으면 엉덩이 밑으로 걸레질을 해 댈 사람이다.” 라고 놀렸다. 그런 팔자여선지 이태 만에야 며느리와 손자를 보게 된다.  일을 많이 해서 몸은 고단한데 보스코가 없어선지 잠이 잘 안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