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3일 일요일. 흐림


금요일. 몇 주 전부터 휴천면 공설운동장에서 면민 체육대회와 잔치가 있다는 방송. 걷기도 힘든 노인들이 무슨 체육을 할까 궁금하기도 해서 우리도 참석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동네별로 노장과 청년들이 합치면 축구팀을 구성해 겨뤘지만 이제는 종목부터 굴렁쇠’, ‘투호’, ‘제기차기’, ‘윷놀이등으로 바뀌었다. 그마저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노인들이 굴렁쇠를 쫓아가거나, 두 발로 서기도 힘들면서 제기를 찬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고중년들이 다소 보이기는 하지만 선수로 나갈 만큼 덜 늙은 남자를 찾기도 힘들다. 쇄락해 가는 농촌 인구의 미래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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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점심도 각 마을 부녀회장이 주축이 되어 아짐들이 비빔밥과 전부침이라도 했는데, 이젠 아예 뷔페 회사에서 점심을 가져온다. 면장과 인사를 나누고 휴천면에 유일하게 남은 초등학교 금반초등학교어린이들과 한 식탁에 앉아 잔칫밥을 먹었다


초딩들이 접시에 퍼온 음식에는 채소는 없이 튀김과 고기 종류가 전부. 그래도 미역국에 흰 밥을 말아 먹는 품이 신기했다. 작년 가을 빵고신부가 데려온 청년들도 고기만 먹고 내가 정성껏 마련한 상추나 김치까지도 채소에는 손도 안 댔다. 요새 젊은애들 식성이 다 저렇구나 싶었다. "맛이 어떠니?" 물으니 한 어린이는 "먹을 만해요."라고 점잖게 대답하고 또 한 애는 "야무지게 먹었습니다."라고 답한다. 우리 때에 쓰던 '잘 먹었습니다. '라는 말은 없어졌나 보다. 식생활도 언어도 세대 차이가 확연했다.


휴천재 마당 잔디밭이 지난 수년간 잡초밭으로 변해 잡초 제거가 아예 불가능해지자 진이엄마가 별수가 없다며 약(잔디만 살리는 제초제)을 쳐야 한단다. 몹시 안 내키는 일이지만 나마저 이젠 쭈그리고 앉아 잔디밭 풀 뽑는 일은 불가능해져 제초제를 뿌려야 했다. 그래도 살아난다면 잡초도 잔디랑 함께 키울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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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니 오리털파커와 코트가 더 더워 보여 어제는 빨 수 있는 겨울옷을 거의 다 빨았다식당채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화초 포인세티아도 방을 빼고 바깥으로 내보냈다. 겨우내 화려했던 부감비도 꺼내 전지하고, 바질은 아예 현관 입구 오른쪽에 밭을 만들어 심어주고 사이에는 루콜라 씨를 뿌렸다. 각시패랭이꽃 옆에는 겨울 난 샤프란을 나눠 심어 색색이 어우러지게 했다. 오후 내내 화단가에 심겨진 돌도 끌어올리고 반송도 이발시키고 나니 토요일도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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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휴천재 현관문 자물쇠도 고쳐서 끼우고 새로 사온 자물쇠는 식당채 현관문에 달았다. 농약 치는 분무기가 새것이지만 몸통에서부터 물이 새어나와 제조공장에 수선을 부탁하고 월요일에 부치기로 포장해 두었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68

공소회장 부부가 출타하니 부활 제3주일('엠마우스 주일') 공소예절에 참석한 사람은 딱 넷. 보스코와 나, 토마스 2, 한남마을 양엘리사벳. 그래도 공소가 있는 한 공소 예절은 끊기지 않아야 된다는 게 보스코의 지론이다. 자동차 30분 거리에 성당이 있으니 나는, 영성체도 할 수 있는 성당으로 미사 가는 게 옳다는 생각지만 아직도 어르신그것도 남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한국 정서에 맞는 듯해서 그냥 따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15명 안팎이 함께 하던 공소가 확 줄었고, 더구나 코로나 이후 모든 시스템이 붕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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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에는 미루네와 함께 원지에 가서 내 생일을 축하하여 식사를 하고, 팔보식품으로 돌아와 미루가 마련한 케이크를 들며 노래와 축하를 받았다. 짧지 않은 인생에 많은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이렇게 행복하다니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빵고신부와 청신년회원들의 축하노래, 멀리 스위스에서 빵기 가족들의 축가와 축하, 국수녀님의 축하. 이탈리아에서 전화로 축하해준 카르멜라와 도메니코, 문자를 보내준 알프스 모니카와  이레네, 발레리아, 그리고 내 일기 페친들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특히 제일 가까이 있고 최고의 인생 동반자이며 친구인 보스코에게서.


오늘도 하루가 저물고 내 인생 ()73세의 첫날이 시작한다. 오늘 저녁에 네플릭스에서 시청한 투르키예 영화 <음유시인들의 축제>에 나온 부자간의 대사. "어렸을 적엔 저 호수가 바단 줄 알았어요. 물도 많이 줄었네요." "물도 줄고 세월도 줄었지. 그리고 줄어든 세월은 다시 채워지지 않아."


나를 낳아주신 엄마도나를 낳고 '딸'이라고 무척 반겨주셨다던 친정 아버지도 지금은 모두 하느님 품에 계시니 나 역시 주어진 날들을 열심히 살다가 영원한 친정집으로 합쳐야겠다.


휴천 공설운동장에는 수령420년 느티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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