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6일 목요일. 반가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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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이 많이 아프다. 집을 고치며 먼지가 많이 눈에 들어가는지 요즘 미세먼지 때문인지 불쌍한 두 눈이 고생을 한다. 그런데 "부부는 이심이체(異心異體)"라는 우리 시동생의 시니컬한 말과 달리, 우리 부부는 일심동체여선지 보스코도 나 따라 눈이 아프단다.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먹는다'더니... 그 앞에서 내가 안약을 넣으면 즉시 자기도 넣어 달란다.


'암만 해도 서울에 올라 온 길에 공안과엘 가봐야겠다.'니까 자기도 따라 나선다. 모처럼 비가 내리니 집수리 마무리할 일꾼들도 안 오겠다, "비 내리는 종로로 가자." '공안과로 가자.' 담당의 이선생님은 특히 녹내장끼가 있는 보스코더러 6개월에 한번은 정기검진을 받으라고 했더니 2년이 넘어서 왔다'고  나무란다. 그의 대답이 '안 아프니까 안 왔죠!'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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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이 뻑뻑하고 눈물이 줄줄난다.'니까 '노안이어서 어쩔 수 없다. 눈물샘으로 흐르게 수술을 하면 눈은 더 건조해 진단다. 바늘 끝 만한 모타가 있어 눈물을 그 길로 내려가게 하면 그 모터 발명자는 대박이 날 게다.'라는 진단을 내린다. '우리 아들더러 딴 짓 하지 말고 그런 모터나 하나 발명하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을 안하네요.'라는 농담도 한다. 2년이나 의사를 안 본 사이 내 눈이 알아서 별 탈 없이 어려운 시기를 고맙게 잘 견뎠다.  하루 12시간 컴퓨터 앞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읽고 번역하는 보스코에게도. "눈을 하도 많이 쓰셔서 눈알이 훈련받아 별탈없나 봐요."라는 주치의의 진단이 내려졌다. 


전철로 오가며 보스코는 여자들 거의가 운동화 차림인 걸 신기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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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내에 나왔으니 우산을 쓰고 주룩주룩 비를 맞으며 종로를 걸어 보기로 했다. 종각에서 탑골공원을 지나 종3공원을 거쳐, 종로 성당 뒤편까지 가서 '곰보냉면'을 먹자 했다. 보스코가 유일하게 유혹에 넘어가는 음식이 회냉면이다. 나머지는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자기가 먹을 음식을 나더러 시키게 한다. 음식주문마저 귀찮다는 듯이 아내에게 시키는 비()-식도락가다. 비가 내려 등을 적셔도 우리는 젊은 날을 정태춘을 기억하며 걸었다.


[퍼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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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 공원 담장 기와도 젖고 고가차도에 매달린 신호등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맛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추어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정태춘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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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집에서도 그는 언제나 회냉면을 먹고 나는 물냉면을 먹는다. 그는 자기 그릇에서 회를 건져 내 그릇에 얹어 주고 맛있어 하는 모습을 즐겨 본다. 그래서 여기 들어오는 남녀가 불륜이 아니고 부부임을 누구나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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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씨가 오후 늦게 기억자 식탁을 고쳐온다 한 터라,  오후에 그의 작업실 '나무공방'에 가보았다. 재생해서 주겠다던 우리 의자는 형체 없이 분해되어 조각조각 버려져 있다. 자기는 일욕심이 많다던 바오로씨는 먼저 자제가 양에 차지 않자 뜯어 고치다 보니 아예 새로 만든다는 말대로였다. '최선을 다 하는 것.' '내가 만드는 모든 것에 충분한 손길을 주고 사랑을 담는 것'이 작업 신조라는 그는 진정한 목수다. 장인(匠人)이다. 그렇게 일하는 교우라면 진짜 신앙인(信仰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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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우리 집에 와서 고친 의자 앞에 놓인 식탁 손보기, 망가진 부엌 싱크대 고치기, 아래 큰방 옷장 문짝 수선해서 달기, 3층 다락에 올라가는 층계 손잡이 설치로 오전을 다 보냈다. 성당 성목요일 전례에서 만난 오베로니카씨도 "바오로씨 오늘 그 집에 일 갔다며? 정말 정말 진국이야. 성당의 모든 소품이 그이 손을 거친 거야." 라고 칭찬했다. 그가 오후에 오면서 책갈피 누르는 문진을 우리한테 선물로 가져다 준 심성으로 알 만하다. Don Bosco, Margarita라는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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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아빠 차사장도  빗속에 올라와서 와서 싱크대 찬장 손잡이 갈기, 보일러 분배기 새는 것 바로잡기 등 소소한 것에 하루를 다 썼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더니 과연 전문가들은 디테일에 강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 '빵기네집'도 우리 둘도 남은 여생 편히 지내게 고쳐지고 수리되고 치장되었다.


저녁 8시 성목요일 미사에 참석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겨주어라." 오늘 강론은 대신학교에 계신 교수님이 손님 신부님으로 와서 주례하였다. 로마 '알풍시아눔'에서 학위할 때 지도교수님이 당신의 안식년도 포기하시고 얼마나 성의 있게 자기 논문을 지도해주셨는지 지금 대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 분처럼 하려고 노력한단다."너희도 그렇게 하여라"힘들지만 실생활에서 우리가 꼭 실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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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41117

'세족례'에 남자 여섯, 여자 여섯, 그리고 양편 다 어린이 둘이 선발된 것은 반가운 풍경이었다. 미사 후 '성체는 무덤제대로 모셔갔고 제단은 벌거벗겨지고 보라색 휘장이 십자가를 가렸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성삼일이다. 


성당을 나온 모든 교우는 성당 현관에서 소박한 빵과 포도주로 '후속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성찬례'가 세워진 성목요일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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