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1일 화요일. 맑음


어제 월요일 아침 일찍 차사장이 일꾼 하나를 데리고 왔다. 먼저 일을 시키려다 그만둔 동네 정씨아저씨는 테라스에 깔린 타일 위로 방수를 하면 아래층 방으로 스며드는 물길을 막을 수 있을 꺼라고 했지만, 차 사장은 타일을 다 걷어내고 그 위에 수평을 잡은 다음에 방수를 해야지 타일 위에 해서는 1년 후에 다시 공사해야 한다.’고 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타일을 걷어내자 그 밑은 축축이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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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시키거나 인간관계를 맺으면 거의가 30~40년의 인연을 유지하는데, 그도 마찬가지. 한 동네 한 집에서 46년째 살아온 덕분이기도 하다. 지리산 휴천재 2층을 마무리해 준 것도 차사장이고 31년전(1992) 서울집을 아파트 한 채 값 들어가게완전히 개축한 것도 그다. 그 집 아이들이나 부인까지도 다들 친해서 차사장이라기보다 지우아빠로 부른다. 2층에 인터폰이 고장 나서 그때마다 문을 열어주기 귀찮아 아예 집 열쇠를 한 벌 내줬다.


드릴로 이층 테라스를 걷어내는 일은 망치로 머리를 지속적으로 두드리는 기분이다. 소리에 유난히 민감한 보스코는 가출 직전이다. 그런데 저렇게 드릴의 진동과 소음을 온몸으로, 하루 종일 견뎌내는 노동자들이 하늘에서 받는 보상이 난청이나 류마티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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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은 타일을 걷어낸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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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에는 서울대입구에 있는 치과에 갔다. 3개월 후에 이를 씌워주겠다면서 우선 임시치아를 본뜨고 돌아왔다. 그이가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실수에 내가 운좋게 당첨되었으니 견디는 수밖에. 마취주사로 비몽사몽 오가는 전철 길도 괜찮다.


오늘 아침부터 담밖이 수선스럽다. 나가 보니 지붕일 하는 일꾼들이 세 명이 왔고 차사장 팀이 지붕을 다시 이을 자료를 올릴 사다리차로 방수패드와 아스팔트싱글을 지붕에 올렸다. 차사장이 의연하게 지붕 위에서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들과 호흡을 맞추는 모습은 당당한 우리의 오래된 친구요 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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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룻만에 지붕을 덧씌우는 작업을 거의 마쳤다. 방수패드를 펼치고, 한쪽은 콜탈이 묻어 끈끈한 부분을 먼저 있던 아스팔트싱글 위에 붙이면서 못질을 하고, 아스팔트싱글을 그 위에 덮씌우고 망치질을 해간다.


벌집같은 육각형 검은 녹색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처녀시절 살아온 친정집을 그린게이블이라고 내가 이름지어 불렀으므로, 검은 녹색으로 지붕을 이고 나니 먼 옛날로 돌아온 기분이 든다. 50년 전 바로 이 봄에 사랑의 유혹에 빠져보스코 따라 도망 나간 그 그린게이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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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를 걷어낸 아저씨는 테라스의 철저한 방수를 위해 울퉁불퉁한 시멘트 콘크리트를 그라인더로 마저 문지르고 물을 뿌려가면서 빗물이 새들 만한 곳을 일일이 확인한다. 오늘 오후부터는 집 뒤란의 바람벽 자락을 손보고 있다. 시멘트 발랐던 곳이 40년 넘게 땐 연탄 가스에 골병 들어 퍼슬퍼슬 가루로 떨어진다. 그런 곳을 일일이 털어내고 땜질하고 있다.


그 시절 방방에 연탄화덕을 로라로 밀어 넣고 꺼내다가, 새마을 보일러로 물이 덥혀져 방을 덥히다가, 마지막엔 한 곳에 연탄보일리를 설치하고 집중적으로 연탄을 갈았다. 하루에 장장 36장까지도 갈았다. 시멘트 미장도 저렇게 푸석푸석 녹아내리는데, 그 연탄가스를 주부 혼자서 마셨는데도 아직 내가 성하게 살아있으니 사람이란, 아니 한국의 여자사람은 아마도 세상에서 젤로 독한 종자 같다. 남편과 두 아들은 공부해야 하니까 머리 나빠져선 안된다고 나 혼자서 갈았다. 여자는 아예 머리가 떨어진 인종이라 연탄가스 좀 먹어도 더 나빠질 구석이 없다는 신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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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문익환 목사님 통일의 집엘 갔다. 전날 증정한 액자와 연관된 사진을 전해주고, 기증 증서도 받고, 문목사님 판화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통일의 집에 꽃 심는 봉사를 하러 온 문영미씨(문목사님의 아우 문동환 교수님의 따님)도 만났다. 통일의 초석을 놓으신 우리 스승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기리는데 뭔가 보태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돌아왔다.


'경세원' 김영준 사장님이 출판해 준 보스코의 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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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김언호 사장님의 신간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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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5시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한길사를 방문했다. 한길사의 야심작 그레이트북스에 보스코의 역주작,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경세원) 수정판을 넘기고,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식사를 대접 받고 돌아왔다.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물어다 가득 쌓아 놓은 다람쥐 굴처럼, 출판사 사장님답게, 당신이 출판해온 책의 굴속에 자리 잡은 김언호 사장님은 우리에게 바로 어제 출판된지혜의 숲으로』이라는 국배판 화려한 사진첩 책자를 증정했다. 오죽하면 보스코의 친구 김영준씨(출판사 경세원사장)가 김언호 사장님에게 출판사상가라는 존칭을 부여하겠는가! 동아투위에 참가하여 해직당하고 민족정기를 살리기 위해 민족주의자들의 저서들 출판에 앞서면서 평생 투신한 분에게 돌아갈 만한 칭호였다. 


어제 낮 내가 통일의 집에서 사진 찍은 문목사님 대형 판화가 그곳에서도 날 기다리고 있어 김언호 사장님의 출판 사상이 어디에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분들 덕분에 정치검찰이라는 범죄조직과 윤가가 설쳐도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으리라는 신념이 온다. 내가 좋아하는 페란테의 초기소설 버려진 사랑(I giorni dell'abandono)』도 선물 받았다. 


어느 새 계절은 춘분을 맞았다. 마당 한구석에 복수초가 환하게 피었다. 엊저녁 전주에서 개최한 사제단의 시국기도회 미사가, 보스코 말마따나, 일제가 한반도 자궁에 '쉬 쓸어 놓은' 무리를 쓸어내는 작업에 다시 들어간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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