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4일 일요일. 흐리다 가끔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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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하루 이틀 춥다가 삼한(三寒) 다음에 사온(四溫)이 오겠거니 했는데,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고 얼음이 서걱거린다. 텃밭에 배추가 얇은 겉잎으로 추위를 견디는 일도 더는 안될 것 같아 보스코더러 열댓 포기 남은 배추 마저 뽑아 들여놓자 했다.


그래도 실험정신이 강한 이 여인은 세 포기는 그대로 남기고서, 곁에 흩어진 배추 겉잎들을 거두어 수북이 덮어주며 추위를 이겨내라고 북돋아주었다, 전장에서 쓰러진 전우들의 겉옷을 거둬 부상으로 신음하는 병사에게 둘러주는 기분으로. 내가 하는 짓을 지켜보던 드물댁이 한심하다는 듯 '그래봤자 돼도 안해'라고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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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그대로 열 포기를 남겨두었는데, 얼어 녹아버린 게 아니고 까치밥 감까지 다 따먹고  땟거리가 떨어지자 배추밭에 눈을 돌린 물까치 떼가 불과 며칠 만에 싸악 쪼아 먹었다. 물까치의 횡포는 떼로 몰려다니면서 까치나 까마귀 심지어 매들까지 두렵게 만들어 이 지역 조류계에 천하무적이 되었다. 서재 창문 앞 매실나무에 열린 스무 마리 넘는 물까치떼는 사람마저 겁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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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우체국에 나가 택배를 보내고 농협 슈퍼에 들렀다. 내가 찾는 파프리카는 없고 표고버섯이 있기에 냄새를 맡아보니 향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곁에서 표고를 냄새 맡는 여자가 또 있기에 표고향이 하나도 안 나죠?” 물었더니 '산속 600고지에서 원목에 표고 재배를 한다'고 자기 소개를 한다. “혹시 비품이라도 남았으면 사고 싶다는 내 말에 자길 따라오란다


우리 휴천재도 처음 오는 친구들은 골짝골짝으로 끌고 간다고 겁을 내던데, 그 집이야말로 칠선계곡 추성마을 지나 구불구불 한없이 올라간다. 칠선암 바로 절 옆 적막한 곳에 집이 있었다. 사이 좋은 부부 아니면 절대 살 수 없는 깊은 골짜기다. 표고는 한참 더 올라가 산속에서 키운 단다. 2킬로 정도의 표고를 그냥 주며 내년에 좋은 것 나올 때 돈 내고 사먹으세요란다. 시골 농사가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억지로 돈을 주자 다래순에서 받은 다래수액두 병을 선물로 줘서 받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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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살다 보면 다들 이렇게 넉넉해지고 나더러 '언니'라고 부르겠다며 친해졌다. 집에 돌아와 건조기에 넣고 70도에서 7시간을 말리니 생표고 2킬로가 250그램의 마른 표고 두 봉지가 되었다. 보스코가 서리걷이로 딴, 올 마지막 고추도 말리고 가지도 잘라서 말렸다. 텃밭에는 상추, 파슬리, 유채, , 루콜라만 남아 겨울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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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는 날씨가 좀 풀려 산봇길에 나섰다. 아직도 김장을 못한 곳이 많다. 예전 같으면 이집 저집 품앗이로 김장을 했는데 요즘은 아짐들 체력이 받혀주지 못해 절이고 씻는 일이나 겨우 하고 딸네나 며느리가 와야 속을 만들어 넣거나 아예 절인 배추만 싣고 간다. 그래도 나는 김장을 버무려 넣고 끝냈으니 아짐들이 나를 새대기’[새댁]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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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이 김장무는 정지에 보관하고 나머지 무는 텃밭에 구덩이를 파서 묻고, 시래기는 처마에 걸어 널어 말리고 있다. 나 어려서는 겨우내 콩비지에 시래기를 넣어 많이도 먹었다. 엄마의 작은 맷돌이 돌아가는 날이면 국그릇에는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춘 구수한 콩비지와 김장김치가 전부인 밥상 앞에서, 우리 다섯 형제는 전투적으로밥그릇을 비웠다


그때는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만도 호사여서 반찬 타박이란 사전에도 없는 말이었다. 끼니 때마다 엄마는 얼마나 몸과 마음이 고달팠을까? 이젠 항아리 속 한 줌의 재가 되어 멀리 유무상통하늘문에서 혼자 계시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갑자기 엄마의 존재가 내 어깨 가까이서 느껴진다. ‘나 거기 없다. 여기 네 곁에 있잖니?’ 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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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205

오늘은 대림 제2주일. 임신부님과 봉재언니 미루와 이사야가 문정공소에 오는 매달 첫 주. '미틈달'이라 부른다는 11월이 무척 빨리 지나가고 어느덧 2022매듭달도 나흘을 넘겼다. 해마다 빠네또네깡통을 사서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던 일도 보스코의 수술로 깜빡 잊고 넘어갔다. 해마다 국내외 지인들에게 일년에 한번 인사를 나누던 성탄카드도 생각 못하고 넘어갔다. 세월이 빠른 것만 아니고 우리가 늙었다는 신호다.


공소에서 미사를 하니 좋고, 미사 끝나고 공소 식당에서 사랑의 애찬을 나누니 더 좋다. 각 집에서 한 가지 씩 해오는 음식으로 식탁은 차고 넘친다. 헤어지기 아쉬운 은빛나래단사람들은 휴천재에 올라와 민트 차 한 잔을 더하고 한참 노닥거리다 헤어졌다. 쌓아온 우정의 향기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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